미국에서 사람의 수면을 제어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연구가 시작된다. 이 연구는 꿈을 꾸는 수면 단계인 렘(REM)수면을 활용해 충격적인 기억에서 벗어나거나 우울증을 예방하는 게 목적이다. 다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공상과학 영화 '인셉션'처럼 꿈을 조절하거나 인공적으로 이식하는 기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이달 1일 '수면 부족 외상 적응을 위한 빠른 안구 운동 회복 및 향상'이라는 주제로 연구 공모를 냈다. 외상성 기억 통합을 통한 스트레스 적응과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이 과제는 수면 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는 퇴역 군인들의 정신 건강 향상을 위해 마련됐다.
이 연구의 핵심은 렘수면과 스트레스 완화의 상관관계다. 렘수면은 인간이 꿈을 꾸는 수면 단계로, 전체 수면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렘수면은 보통 수면 시간 중 90분 간격으로 4~6회 발생하고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 정도 진행된다.
렘수면은 신경세포가 분비하는 화학물질인 아세틸콜린이 생성되면서 나타난다. 아세틸콜린은 기억의 연상 작용을 활발하게 만드는데, 이때 심장 박동수와 호흡, 뇌 활동이 증가한다. 렘수면 단계에서는 여러 기억과 지식이 통합돼 꿈을 만든다. 뇌에서는 감정 처리와 기억 재조합이 이뤄지고 안 좋은 기억을 분리하기도 한다. 렘수면 장애가 발생하면 학습 능력이나 감정 표현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미 국방부는 이번 연구를 스트레스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퇴역 군인에게 적용할 계획이다. 미국 중독센터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퇴역 군인은 총 6146명으로, 전체 자살 사망자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특히 2001~2020년 사이 20년 동안 퇴역 군인의 정신 장애나 약물 장애 유병률은 27.9%에서 41.9%로 증가했다.
퇴역 군인의 정신 건강이 나날이 악화하면서 미국 정부는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전의식의 뇌 신호를 분석해 인간 반응을 조절하는 NEAT(Neural Evidence Aggregation Tool)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전의식은 일정한 자극을 주면 의식으로 소생될 수 있는 정신영역을 의미한다. 이 프로그램 역시 퇴역 군인들의 우울증을 식별하기 위한 연구 사업이다.
렘수면 제어는 PTSD와 약물 중독으로부터 퇴역 군인들 구제할 수 있을까. 에드워드 페이스-쇼트 미국 하버드대 정신과 교수 연구팀은 2015년 렘수면 장애가 PTSD를 악화할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기분 및 불안 장애 생물학(Biology of Mood and Anxiety Disorders)'에 발표한 바 있다. 연구팀은 렘수면 부족이 기억 통합을 통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제거하는 과정을 방해한다고 분석했다.
인위적인 꿈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실질적인 기술도 이미 마련돼 있다. 아담 호로비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의생명공학센터 연구원 연구팀은 2020년 국제학술지 '의식과 인지(Consciousness and Cognition)'에 손목에 착용하는 웨어러블로 '목표 꿈 배양(Targeted Dream Incubation)'이 가능하다는 결과를 공개했다. 자체 개발한 도르미오(Dormio)라는 기기로 수면 상태를 분석하고 최면을 걸어 특정 기억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조작과 제어를 이용한 기억 활성화·제거 기술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 기술이 악용될 경우 영화 인셉션처럼 특정 대상의 생각을 변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인셉션은 경쟁 기업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 꿈에 들어가 생각을 심는 작전을 수행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다.
미국 과학 매체 파퓰러 메카닉스(Popular Mechanics)는 "이 과제의 목표는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렘수면을 조절하거나 제어하는 것이지만, 이 기회에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될 수 있다"며 "꿈을 조절하고 인위적으로 이식하는 아이디어가 멀지 않았다는 가정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참고자료
Biology of Mood and Anxiety Disorders, DOI: https://doi.org/10.1186/s13587-015-0018-9
Consciousness and Cognition, DOI: https://doi.org/10.1016/j.concog.2020.102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