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쏟아지던 지난 15일 오전 8시 40분쯤 충북 청주시 오송 궁평2지하차도가 잠기면서 도로를 달리던 차량들이 모두 멈춰 섰다. 폭우로 인근 미호천 임시제방이 무너지면서 지하차도에 많은 양의 물이 유입된 게 원인이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당국이 하루 넘게 구조 작업을 벌였지만, 고립된 차량에 타고 있던 14명이 결국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에는 서울 강남을 비롯한 도심 일대가 폭우로 완전히 잠겨버리면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선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숨졌고, 강남에선 맨홀에 빠지거나 지하주차장으로 휩쓸려 가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경북 포항에서도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갑자기 물이 유입돼 7명이 목숨을 잃었다.
기후 변화로 태풍은 갈수록 거세지고 집중호우는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중부지방 강수량은 424.1㎜를 기록하면서 '역대급 장마'로 남았다. 평년 장마철 전체 강수량(378.3㎜)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다.
자연재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국내 방재 전문가들은 경북 안동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하천실험센터를 주목하고 있다. 하천실험센터는 700~800m의 직선수로와 급경사수로, 사행수로 실험시설을 갖춘 곳이다. 총면적은 23만1400㎡로, 축구장 27개 크기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든 하천실험시설인 덕에 해외 연구진들도 이곳을 찾는다.
조선비즈는 홍수 피해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24일과 25일 양일에 걸쳐 건설연 하천실험센터를 방문했다. 홍수 영향과 하천쓰레기 수거 등을 연구하는 이곳에서 물이 불러오는 비극을 멈출 방법을 찾아봤다.
◇폭우로 발생하는 하천·도시홍수…디지털 트윈으로 해결한다
하천은 평상시에는 평온하지만, 폭우 땐 수위가 높아지면서 언제든 사람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된다. 하천실험센터는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생물·식물·동물에서 나온 고분자물질을 첨가한 바이오폴리머 제방을 개발하고, 하천 상류의 댐 방출이 하류의 범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적절한 댐의 개폐율을 찾아내기도 한다.
하천실험시설이 실제 규모와 비슷해야 하는 것은 하천의 크기와 유량, 유속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데이터 값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또 하천 식생 밀도와 바닥의 형태에 따라 물의 흐름이 천차만별이다. 정상화 건설연 하천실험센터장은 "실제 하천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 총 70억원 상당의 장비 180종을 구축했다"며 "장비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연구 장비를 운용하는 두 명의 테크놀로지스트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올해부턴 도시홍수에 대한 방어능력과 회복 탄력성 평가기술 개발 사업에 착수한다. 도시의 인공하천과 우수관, 배수펌프장, 자연저류지 등을 통합적으로 감시해 홍수 발생 위험이 없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2025년까지 도시홍수 평가기술을 실증할 수 있는 시설을 하천실험센터 내에 만들 예정이다. 이 시스템은 추후 지방자치단체들이 조기에 재난문자를 발송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로 활용할 계획이다.
최근 재난재해 관련 연구에서 주목받는 '디지털 트윈'도 개발 중이다. 홍수를 감시하는 폐쇄회로(CC)TV형 유속계, 라이다(Lidar) 유속계, 비접촉식 수위측정계, 우수압력 측정계로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용해 실시간으로 하천·도시 홍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하천 쓰레기 수거하고, 급류사고 매뉴얼 만들어… 사회기여형 연구도
하천실험센터의 임무는 단순히 홍수를 감시하고 예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하천 환경보호와 하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연구도 진행한다. 사회적 수요에 맞춰 일반 하천에서 실험해보기 힘든 공공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취지다.
하천실험센터는 현재 충남 공주시 유구천과 부산 에코델타시티 평강천에서 하천 부유 쓰레기 수거 시스템을 실증 중이다. 장비 자체는 컨베이어벨트를 부력으로 띄워 쓰레기를 수거통으로 수집하는 방식으로 단순하지만, IoT가 적용된 CCTV로 쓰레기양과 수질 분석이 가능하다. 특히 충남 공주시 유구천에 설치된 하천쓰레기 수거 시스템은 올해 홍수에도 안정적으로 쓰레기를 걸러냈다. 하천쓰레기 수거 시스템은 하천 환경보호는 물론, 궁극적으로는 해양 미세플라스틱 발생을 억제한다.
실험시설을 이용해 급류사고 구조매뉴얼을 만드는 데에도 참여한다. 하천실험센터는 소방청 소속 국립소방연구원, 대구·경북소방본부와 함께 급류사고 구조훈련을 진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매뉴얼을 만들 예정이다. 이번 폭우로 구조에 나선 해병대 소속 병사가 사망한 만큼, 홍수 재난 대응에 꼭 필요한 작업이다.
정 센터장은 "부유 쓰레기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하천 오염도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지자체에 알려줄 수 있다"며 "매년 급류사고 구조 훈련을 센터에서 진행했는데, 올해는 국립소방연구원과 함께 협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센터에서 현실적인 하천 상황을 재현할 수 있다는 순기능을 활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유일무이한 하천실험시설… 전 세계로 뻗어간다
하천실험센터는 실규모 하천실험시설을 토대로 국제공동연구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미 미국 지질조사국(USGS)과 아이오와대, 핀란드 알토대, 네덜란드 델프트공대와의 국제협력 경험이 있다. 2014년부터는 안동하천포럼을 개최해 해외 연구자들과 교류를 시작했고, 연구방법과 장비 운용 노하우를 전수받아 하천실험센터의 역량을 끌어올렸다.
하천 분야에서는 실규모 실험이 없으면 논문 통과가 쉽지 않은 추세여서 하천실험센터에 대한 해외 연구진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최근엔 아이오와대와 만곡수로(곡선 형태를 띠는 수로)의 하천 바닥 변화를 주제로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과제를 따냈다. 독보적인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저명한 하천 분야 국제 학술대회에 하천실험센터의 특별 세션을 만드는 게 목표다.
정 센터장은 "국내외 연구진이 모여 실험하면서 성과를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며 "좋은 인프라를 계속 개발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가 하천 실증 연구 분야를 선도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