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스페이스홀딩스 홈페이지 화면. 파산한 버진오빗과 함께 우주 발사체 사업을 진행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제이스페이스홀딩스

대구 수성구에 사는 이모(62)씨는 올해 2월 브로커의 텔레마케팅 전화를 받고 국내 우주기업이라는 제이스페이스홀딩스의 비상장주식을 매수했다. 브로커는 제이스페이스홀딩스를 미국의 버진오빗(Virgin Orbit)과 협력해 위성 발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망한 업체로 소개했다. 곧 상장한다는 브로커의 말을 믿고 이씨가 매수한 비상장주식은 500주로, 총 1000만원 상당이다.

제이스페이스홀딩스와 협력한다는 버진오빗은 올해 4월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미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이씨는 뉴스를 보고 비상장주식을 팔려고 했다. 그러자 브로커는 너무 소량이라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2000~3000주를 보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증권사 직원 명함을 보여주며 나타난 매도자도 2000주 이상만 사겠다고 말했다. 결국 이씨는 비상장주식 4000만원 어치를 추가로 사들였지만, 브로커와 매도자는 모두 잠적했다. 이들의 휴대전화는 모두 대포폰이었고 명함도 허위임이 드러났다.

경찰이 우주 관련 사업을 한다고 홍보하면서 비상장주식을 팔고 투자금을 챙겨 잠적하는 비상장주식 사기 일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피해자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비상장주식을 매수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경찰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서울 마포경찰서는 제이스페이스홀딩스 비상장주식을 팔고 잠적한 월드코퍼레이션 소속 브로커 김모씨 등 3명에 대해 사기, 자본시장법 위반(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로 수사 중이다.

제이스페이스홀딩스는 항공기에 로켓을 매달아 위성을 발사하는 버진오빗과 손을 잡고 국내에서 위성 발사 사업을 제공한다고 홍보해온 업체다. 하지만 버진오빗은 로켓 발사에 실패한 이후 자금난을 겪다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제이스페이스홀딩스의 국내 발사 서비스 가능성에 대해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확인한 결과 관련 논의가 이뤄진 적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다른 피해자 김모(33)씨도 같은 수법으로 피치프라임이라는 투자 업체로부터 제이스페이스홀딩스 비상장주식을 샀다가 피해를 봤다. 텔레마케팅으로 비상장주식을 매수한 김씨가 매도하고 싶다고 말하자 브로커는 추가로 주식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추가로 사들인 비상장주식은 3000만원. 총 4000만원의 돈을 날렸다. 김씨 역시 추가로 비상장주식을 매수하자마자 브로커와 매도자가 잠적했다고 설명했다. 매수를 권유한 투자 업체 이름도 계속 바뀌는 탓에 따지기도 어려웠다.

김씨는 “가짜 명함을 보여주면서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며 “처음엔 소액으로 시작하지만, 추가로 비상장주식을 매수해야 팔 수 있다는 식으로 속여 피해 금액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제이스페이스홀딩스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의 허위 기사들이 나왔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실체가 없는 업체였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우주 분야에 대한 정부 투자가 늘어나고, 민간 기업이 적극적으로 우주 산업에 진출하는 ‘뉴스페이스’가 각광을 받으면서 이를 악용하는 사기도 늘고 있는 셈이다.

한 피해자가 보유한 제이스페이스홀딩스 비상장주식./독자 제공

제이스페이스홀딩스 비상장주식 사기 피해자들을 모아 집단고소를 진행하는 곳도 있다. 법무법인 대건은 제이스페이스홀딩스를 포함해 비상장주식으로 투자금을 날린 피해자들을 모아 집단고소에 나서고 있다. 최근 들어 코인을 이용한 사기 대신 비상장주식 사기가 횡행하면서 피해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은 브로커 세력과 비상장주식을 제공한 회사 사이의 공모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 정도로 대량의 주식이 유통되는 만큼 회사 관계자가 연루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경찰 수사에서 비상장주식을 지급한 증권 계좌 명의를 추적해 주범을 파악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집단고소를 담당하는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제이스페이스홀딩스를 포함한 비상장주식 사기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며 “하나의 계좌에서 많은 주식이 나간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기 때문에 모니터링으로 사전에 막아야 한다. 사후에 형사 고소로 조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당국이 비상장주식 사기에 대처하지 않다보니 보이스피싱 수준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