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날씨가 불쑥 찾아온 지난 13일 제주시 구좌읍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제주연구소로 들어서자 온실처럼 보이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내부로 들어서자 네 개의 수조에서 물레방아가 한가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제주 앞바다는 물론 전 세계 바다에서 흔히 발견되는 식물성 플랑크톤인 '스피룰리나'를 키우는 '식의약품 미세조류 생산시설'이다. 수조 하나에는 7t에 이르는 용암해수가 들어가지만 배양을 통해 생산되는 스피룰리나 분말은 7㎏뿐이다.
건너편에는 온도에 따른 생물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제주 트로피카'라는 실험 시설이 있다. 이곳에는 총 4개의 챔버가 있어 미세조류가 어떤 온도에서 가장 잘 배양되는지 알아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미세조류는 환경에 매우 민감하다. 유속과 온도, 빛 같은 배양 조건을 정확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표한 종과는 다른 미세조류가 더 많이 발생하거나 미세조류가 모두 죽는 사태가 발생한다.
해양과기원 제주연구소가 바다 미세조류인 스피룰리나에 주목한 이유가 있다. 여러 연구를 통해 당뇨병과 간 질환, 빈혈, 영양 불량을 예방하는 이른바 '슈퍼푸드'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2000년대 초부터 건강 대용 식품으로 활용했는데, 대량 배양이 어려워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국내에서는 2006년부터 스피룰리나를 대량으로 배양하는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의 태평양해양과학기지에서 시작한 연구는 2015년 문을 연 제주연구소가 이어받았다. 제주연구소 관계자는 "스피룰리나는 배양 조건이 까다로워 가장 많이 배양되는 유속 조건인 15rpm(rpm·분당 회전수)을 찾는 데만 2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 성과로 해양과기원의 스피룰리나 배양율은 해외 다른 시설보다 2.5배 높다.
특히 스피룰리나는 전 세계에서 흔히 발견되는 미세조류지만 제주의 용암해수와 잘 맞는다. 용암해수는 담수 지하수와 다르게 해안가의 바닷물이 제주도 화산암에 스며드는 해수를 뜻한다. 제주연구소 연구진은 "용암해수는 미세조류에 영양을 주는 미네랄이 풍부하고, 사용한 만큼 바닷물이 곧바로 유입되기 때문에 고갈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해양과기원이 이렇게 대량 생산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피룰리나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시장조사업체 밴티지마켓리서치에 따르면 미세조류인 스피룰리나만 해도 한 종의 시장 규모만 지난해 5억4252만달러(7000억원)에서 2030년 11억2955만달러(1조44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간 성장율이 10%에 이른다.
해양과기원은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해양 미세조류 소재로는 최초로 스피룰리나가 기억력 개선에 효과가 있는 원료라는 인증을 받았다. 70대 이상 경도 치매 환자 180명을 대상으로 두 차례 임상을 진행한 결과, 시각기억과 어휘력에서 뚜렷한 개선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스피룰리나 추출물로 배양육을 생산하는 기술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배출한 연구소 기업인 씨위드에 이전해 상용화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진은 스피룰리나로 백신을 개발할 때 사용하는 무혈청 배지(배양액)를 만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백신 개발 과정에서는 세포가 증식하게 돕는 배양액에 소의 태아 혈청이 들어간다. 소 태아 혈청은 채취 과정에서 윤리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고 연간 3000억원에 이르는 비용이 들어간다. 연구진은 이를 스피룰리나 추출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양과기원 제주연구소는 이 같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스피룰리나 사업화를 목표로 하는 연구소 기업을 3곳을 배출했다.
제주연구소는 최근 미세조류를 대량 생산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한다. 향후 스마트 복합해양배양센터와 해양 미세조류 공공 파운드리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공 파운드리의 경우 제주도와 협의를 통해 이미 2000평의 부지를 확보했다. 시설이 완공되면 전 세계 스피룰리나 생산량의 15~21%를 점유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세조류 파운드리 시설 구축은 미국 기업 사이아노테크(Cyanotech)가 하와이에 구축한 축구장 50개 크기에 달하는 11만평 규모 생산 시설을 참고할 계획이다.
해양과기원은 공공 파운드리 구축 사업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내년 국가연구개발사업으로 제안할 예정이다. 박흥식 해양과기원 제주연구소장은 "민감한 미세조류는 대량 생산 시스템에서 배양 조건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파운드리에서 연간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현재는 미세조류 산업화를 위해 연간 5만~7만t 수준의 생산시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도형 해양과기원 원장은 "스피룰리나로 기억력 개선 건강기능식품 인증받은 것은 전 세계적으로 해양과기원이 처음"이라며 "환경과 바이오를 엮어 산업을 키우기 위해선 해양 미세조류 공공 파운드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