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한국 SF영화 ‘승리호’는 인공위성 잔해 같은 우주쓰레기를 처리해 돈을 버는 청소선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가 그리는 미래는 2029년으로 불과 6년 뒤다. 영화처럼 로봇팔이 나와서 우주쓰레기를 집는 게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놀랍게도 이미 비슷한 기술이 상용화됐다.

미국의 방산기업인 노스럽 그러먼은 2020년 2월 25일 ‘임무 연장 위성1호(Mission Extension Vehicle, MEV-1)’를 이용해 지구 정지궤도에 있던 방송통신 서비스 위성인 인텔샛(Intelsat) IS-901호에 도킹하는 데 성공했다. IS-901호는 정지위성이 머무는 고도보다 200~300㎞ 정도 높은 이른바 ‘우주무덤’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MEV-1호는 IS-901호를 붙잡아 정상 궤도로 끌어내렸다. IS-901호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자세제어와 궤도제어까지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이른바 ‘궤도상 서비스(On-Orbit Servicing)’의 시작이다.

2020년 2월 MEV-1호가 IS-901호를 원래 고도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노스럽 그러먼

한국도 궤도상 서비스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정부는 31일 열린 우주개발진흥실무위원회에서 ‘우주물체 능동제어 선행기술 개발방안’을 심의·의결했다. 이날 함께 처리된 누리호 3차 발사나 차세대 발사체 개발사업 같은 굵직한 다른 안건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지만, 우주 전문가들은 한국이 주목해야 할 우주 산업 분야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우주물체 능동제어 선행기술은 승리호 같은 우주 청소선보다 현실적으로는 MEV-1호 같은 임무 연장 위성에 필요한 기술을 말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인공위성 같은 우주물체에 접근해 위치나 궤도를 변경하거나 연료 보급, 수리, 궤도 견인 등을 통해 우주 자산의 수명을 연장해주는 기술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는 구체적으로 2027년까지 근접 비행 및 위치 제어 등 관련 선행기술 개발에 나서고, 2028년부터는 기술 고도화에 나선다는 계획을 세웠다. 임무가 종료된 위성을 대상으로 실제 우주 환경에서 기술 실증도 진행할 계획이다. 차세대 발사체를 이용해 달 탐사에 나서는 2030년대에는 승리호 같은 한국의 궤도상 서비스도 제공하겠다는 목표이다.

이준배 과기정통부 거대공공연구정책과장은 “인공위성이 굉장히 많이 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수리·보완하면 오래 쓸 수 있고, 이런 산업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며 “이 부분은 우리가 뒤처진 산업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하면 미래 시장 선점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궤도상 서비스는 미국 노스럽 그루먼을 제외하면 아직 실질적인 성과를 낸 곳이 없다. 노스럽 그루먼은 2021년에도 MEV-2호를 발사해 IS-1002호와 도킹하는 데 성공했다. 궤도상 서비스의 이용료는 위성 1기당 5년간 약 78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MEV는 임무가 마무리되면 다른 위성을 대상으로 또다시 궤도상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한번 뛰어들기만 하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일본의 애스트로스케일은 2021년 지구 궤도를 도는 고장난 위성과 우주파편을 제거하는 궤도상 서비스 시연에 성공했다. 애스트로스케일은 최근 미쓰비시전기와 미쓰비시 UFJ뱅크, 개발은행으로부터 7600만달러 규모의 시리즈G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감했다.

이밖에 미국의 모멘터스는 궤도와 궤도 사이에 짐을 운송하고 수명이 다한 위성을 안전하게 궤도에서 이탈시키는 수송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오비털팹은 애스트로스케일과 위성들의 임무 연장을 위해 위성 급유 서비스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래픽=손민균

궤도상 서비스의 잠재적인 수요가 급증하는 것도 시장 전망이 밝은 이유다. 현재 지구 궤도에 있는 인공 우주물체는 2만6715개에 달한다. 이중 통제할 수 있는 물체는 7270개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정상 고도를 벗어나거나 고장 등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궤도를 돌고 있다. 궤도상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새로운 위성을 쏘는 대신 고장난 위성을 고쳐서 쓸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NSR에 따르면 궤도상 서비싱 시장 규모는 2030년에 62억달러(약 8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 우주군도 미래 우주에서 군사 작전을 하기 위해 병참선 역할을 맡을 상업 우주 수송 파트너를 찾고 있다. 스티븐 퍼디 미 우주군 우주시스템 사령부 우주접근보장 집행관은 지난 2월 열린 스페이스 모빌리티 콘퍼런스에서 “미군은 상업적으로 우주궤도에서 군수품을 이동하고 비전통적인 궤도에 군사위성을 옮겨 주고 연료를 보급할 파트너를 찾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을 지낸 김해동 경상대 항공우주및소프트웨어공학부 교수는 “궤도상 서비스 기술은 해외에서 수입하기 어려운 고난이도 기술이자 국방과 연관된 기술로 국가 우주자산 보호와 수명 연장에 향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기존 우주개발과 달리 조기 기술 확보를 위해 산학연군 관련 연구자들이 구체화된 로드맵에 의해 융합연구로 연구개발 사업 준비단계부터 한데 모여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한국항공우주학회지, DOI : https://doi.org/10.5139/JKSAS.2022.50.8.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