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이 국내 의약품 특허의 존속기간 상한을 14년으로 못 박기로 했다. 존속기간 상한이 없는 탓에 의약품 특허를 과도하게 보호해 제네릭(복제약) 출시가 늦어지고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높인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20일 특허청과 국회 등에 따르면, 특허청은 최근 의약품 특허권 존속기간 제도 개선을 위한 특허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의원 입법의 형태로 조만간 개정안이 발의될 전망이다.

의약품은 개발에 오랜 기간이 걸리는 특성을 감안해 다른 품목과 특허 제도가 다르게 운영된다. 일반적으로 특허기간에 임상시험이나 규제기관의 허가·심사로 지연된 특허 불실시 기간을 5년 내에서 연장해주는 식으로 운영된다. 특허권 설정등록일과 품목허가일이 크게 차이가 나는 걸 감안한 것이다. 이런 특허권 존속기간 연장제도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대부분의 국가가 도입하고 있다.

한국과 다른 국가의 의약품 특허권가 달라지는 건 유효기간의 상한 여부다. 미국이나 유럽은 의약품 특허의 전체 유효기간에 상한을 두고 있다. 과도하게 특허를 보호하면 제네릭 출시를 막아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제품이 품목허가를 받은 시점을 기준으로 미국은 14년, 유럽은 15년의 상한기간을 둔다. 상한기간 내에서는 특허권의 존속기간을 연장하는 게 가능하지만, 상한기간을 초과하는 순간 특허권도 사라지게 된다.

한국은 특허법에 별도의 상한기간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미 특허 보호기간이 끝난 의약품도 한국에선 여전히 보호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화이자의 표적항암제인 잴코리는 한국에서 16년 6개월이 넘도록 특허권을 보호받고 있다. 별도의 유효기간 제한을 두지 않은 탓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유효 특허기간이 14년 이상인 의약품 특허는 111건으로 전체의 18%에 달했다. 품목허가를 받은 제품만 따져도 79건으로 전체의 약 22%다. 시장에 나와 있는 의약품 4건 중 1건은 14년 이상 특허권 보호를 받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었다면 이미 특허권이 만료돼 제네릭이 나왔을 의약품이다.

의약품 특허권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지적은 그동안 계속됐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지난해 특허청 국정감사에서 "통상 미국이나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특허를 포함한 지식재산권을 더욱 강하게 보호하는데, 특허연장기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만 유독 허술하다"며 적어도 지적재산권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의 예시를 따라 우리나라 국민들 또한 제네릭 약품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특허청장이 신속히 제도를 개선해 주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주요국 의약품 특허권 존속기간 연장제도 현황. 한국과 일본은 존속기간 상한이 별도로 없었다. /특허청

권경희 동국대 약학과 교수 연구팀이 최근에 '약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권 교수 연구팀은 "과도한 의약품 특허 보호는 저가 제네릭의 시장 진입을 지연시키고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킨다"며 "제품의 허가일로부터 특허기간 연장에 대한 적절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허청은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작년 하반기부터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의약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지난달 특허법 개정안을 마련했고 국회와 협의도 진행했다.

확정된 특허법 개정안에서는 의약품 특허권 존속기간을 미국과 마찬가지로 '품목허가 후 14년'으로 못 박았다.

연장 가능한 특허권 개수도 단수로 제한된다. 기존에는 하나의 의약품에 복수의 특허권 연장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같은 의약품에서도 물질, 의약용도, 제형, 투여용법 등을 별도로 특허를 낸 뒤 연장을 따로 신청해 제네릭 출시를 늦추는 '꼼수'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 등은 하나의 특허권만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애초에 이런 꼼수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도 이번에 특허법을 개정하면 연장가능한 특허권이 단수로 바뀌게 된다. 이외에 특허청은 의약품 특허권 존속기간 연장순서나 기산점을 명확하게 하는 미비했던 관련 규정도 손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