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화성 탐사를 위해 바퀴 6개로 움직이는 이동형 탐사 로봇 스피릿을 개발해 2004년 화성에 착륙시켰다. 하지만 2009년 오른쪽 뒷바퀴가 모래에 빠지는 바람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동 대신 고정 탐사로 임무를 바꿨지만 결국 이듬해 3월 통신이 끊겼다.

미국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발간하는 스펙트럼지(誌)는 바퀴나 다리가 없어 모래에 빠지거나 돌에 걸려 넘어질 위험이 없는 우주 탐사 로봇이 개발됐다고 지난 3일(현지 시각) 전했다. 헬스장에서 코어 근육을 단련할 때 쓰는 짐볼처럼 굴러가는 로봇인 로보볼(RoboBall)이다. 5년여 개발 끝에 시제품이 나와 달 지형과 비슷한 지형에서 통통 튀면서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

울퉁불퉁한 길을 구르는 공 모양 로봇인 로보볼. 안쪽에 탐사 장비를 갖추고 달 충돌구 내부를 탐사할 수 있다./미 텍사스 A&M대

◇달 충돌구 안쪽 탐사에 활용 기대

로버트 앰브로스(Robert Amrose) 텍사스 A&M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2003년 나사에 근무할 당시 달 탐사 로봇 외부를 팽창식 공으로 감싸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동안 우주 탐사 로봇은 불규칙한 지형에서 넘어지는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공은 굴러갈 뿐 넘어지지 않는다. 내부에 있는 카메라나 탐사 장비는 공의 움직임에 맞춰 회전하면서 자세를 유지한다.

공처럼 팽창한 외피는 탐사 장비가 날카로운 암석이나 먼지에 손상되는 것을 막는다. 특히 극심한 온도 변화도 차단할 수 있다. 달은 온도 변화가 하루에 섭씨 200도를 훌쩍 넘는다. 낮에 햇빛이 비치면 섭씨 121도까지 온도가 올라갔다가 밤이 되면 영하 133도까지 내려간다. 늘 햇빛이 비치지 않는 충돌구 안쪽은 그보다 더 온도가 낮다.

나사는 달 남극의 새클턴 충돌구가 우주인이 거주할 기지를 세울 최적지라고 본다. 앰브로스 교수 연구진은 로보볼이 이 충돌구 내부를 탐사하는 데 안성맞춤이라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새클턴 충돌구 안쪽에는 늘 햇빛이 들지 않아 다량의 물이 얼음 상태로 저장돼 있다고 본다. 물은 우주인을 위한 식수가 되고, 분해 산물인 산소와 수소는 우주인이 호흡하고 로켓 연료로 쓸 수 있다.

텍사스 A&M대 연구진은 지난 2월 지름 1.8m, 무게 150㎏인 로보볼 Ⅲ을 텍사스 중부의 채석장에서 시험했다. 로보볼은 바위와 자갈, 진흙 위를 거침없이 굴러갔다. 새클턴 충돌구는 깊이가 4㎞에 이른다. 바퀴나 다리가 있는 로봇으로는 내리막길을 안전하게 내려가기 어렵다. 로보볼은 공처럼 통통 튀며 내려갈 수 있다.

방향 전환도 가능하다. 공 안쪽에 추(진자)가 좌우로 움직이면 로보볼도 그에 맞춰 이동한다.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추를 뒤로 이동하면 내려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조지아 공대 행성로봇공학연구소장인 마사히로 오노(Masahiro Ono) 교수는 "로보볼의 가장 훌륭한 점은 단순함"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로봇은 액추에이터(구동기)로 움직이는데 로보볼은 액추에이터가 단 두 개이고, 둘 다 공 모양 외피 안에 있어 먼지나 돌에 손상될 위험도 없다고 말했다.

로보볼을 실은 달 탐사차(위)와 로보볼 내부 장비에서 삐져나온 바늘 모양의 로켓(오른쪽). 탐사차가 로보볼을 달 충돌구 안으로 내려보내면, 바닥에서 시료를 채취하고 로켓에 실어 위로 올려 보낸다./미 텍사스 A&M대

◇회전력 2.5배 높이고 로켓도 장착

연구진은 로보볼이 반세기 만에 다시 달에서 채취한 암석, 토양 시료를 지구로 보낼 수 있다고 밝혔다. 나사는 1972년 12월 아폴로 17호 이후 달에서 채취한 암석, 토양 시료를 가져오지 못했다. 로보볼이 달 시료를 채취하고 지구로 보내는 일은 단계별로 진행된다.

먼저 달 착륙선에서 나온 무인 탐사차가 충돌구 가장자리까지 이동해 로보볼을 부풀린다. 이후 내리막길을 내려가 얼음이 있는 곳에서 장비를 꺼내 시료를 채취한다. 로보볼은 내리막길은 굴러 내려가지만 오르막길을 스스로 올라갈 수 없다. 연구진은 시료를 로켓에 실어 발사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탐사차는 로켓을 회수해 지구로 가는 우주선에 시료를 실어 보낸다.

앰브로스 교수는 2021년 텍사스 A&M대 교수로 와서 로보볼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이듬해 지름 50㎝인 로보볼 Ⅱ를 개발해 아이디어가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후 실물 크기의 로보볼 Ⅲ을 제작하는 데 11개월이 걸렸다. 연구진은 첫 번째 채석장 실험 후 토크(회전력)를 2.5배로 높였다. 덕분에 작은 장애물을 뛰어넘고 20도 경사 언덕도 올라갈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지난해 11월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대용량 배터리로 구동되는 로보볼 Ⅲ이 채석장 경사면을 내려가고 모래처럼 부드러운 지형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작은 로켓으로 가상의 탑재물을 경사면 위쪽으로 발사했다. 로보볼 시제품 제작에는 25만달러가 들어갔다.

공 모양의 달 탐사 로봇인 로보볼을 제작한 텍사스 A&M대의 대학원생 리시 장갈레(Rishi Jangale, 왼쪽)와 데릭 프라베체크(Derek Pravecek)./미 텍사스 A&M대

앰브로스 교수는 앞으로 로보볼 외피를 강철 파편 위를 굴러갈 수 있을 만큼 견고하고 영하 184도까지 견딜 수 있는 소재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경사도에 따라 주행 방식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도록 설계할 계획이다. 텍사스 A&M대는 올해 말 휴스턴에 세계 최대 규모의 달, 화성 지형 모사 시설도 개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로보볼이 달 충돌구를 탐사하기까지는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하다. 그 전에 지구에서 먼저 성능을 입증할 수 있다. 논문 제1 저자인 리시 장갈레(Rishi Jangale) 박사과정 연구원은 "허리케인이 지나간 뒤 로보볼들이 무리지어 배치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며 "공 로봇들은 침수 지역의 지도를 만들고 생존자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IEEE Transactions on Field Robotics(2025), DOI: https://doi.org/10.1109/TFR.2025.3633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