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창업을 해보니까 상황이 20년 전과 비교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더라고요. 지금 바뀌지 않으면 20년 뒤에도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박용근 카이스트 물리학과 석좌교수(토모큐브 대표)는 10일 서울 엘타워에서 열린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기한림원) 원탁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교수는 2005년 대학원에서 기초연구를 시작해 2015년 토모큐브를 창업해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키웠다. 그간 정부가 연구개발(R&D)과 벤처창업 지원을 확대해 왔지만, 창업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은 20년 전 대학 실험실 창업 1세대가 경험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기한림원은 이날 '연구실에서 세상을 바꾸는 기업으로-제2의 구글을 향한 한국 딥테크 스케일업 전략'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박희재 서울대 기계공학부 명예교수는 발표에서 "한국이 한 해 약 40조원을 국가 R&D에 투입하는 데 비해 연구 인력이 창업으로 향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며 "졸업 후 희망 진로로 대학·연구소와 민간 연구소를 선택한 비율은 80~90%에 달했지만 창업은 1.6%에 그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의 원천 기술이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기술, 금융, 영업·마케팅이라는 세 축이 함께 돌아가야 하는데 국내 대학 창업은 기술을 가진 연구자에게 나머지 역할까지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며 "연구자는 혁신에 집중하고 금융·마케팅 전문가가 파트너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희재 교수는 그 출발점으로 지식재산권(IP)을 꼽았다.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기술은 논문 발표에 앞서 특허를 먼저 확보하는 '선특허 후논문' 원칙이 필요하고, 기업과 공동연구를 할 때도 대학이 핵심 특허에 대한 권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성과가 먼저 공개되거나 기업에 공동소유권·무상 실시권을 넘기면 이후 기술이전이나 창업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박용근 교수는 "창업지원 사업이나 특허지원 제도처럼 방법론은 계속 추가되고 있지만, 대학이 어떤 인재와 연구성과를 만들어야 하는지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정책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기술기업의 성장 속도가 빨라진 만큼 대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맞춰 대학원 연구는 논문 수나 임팩트 팩터 합계가 아니라 새로운 분야를 열었는지, 세계 1~2위 수준인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용근 교수는 "연구의 목표는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것이고 개발의 목표는 제품을 만들어 수익을 내는 것으로, 같은 잣대로 관리해서는 안 된다"며 "정권이나 총장 임기 안에 가시적 성과를 내도록 압박하는 방식으로는 딥테크 성장을 이끌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김경환 성균관대 글로벌창업대학원 교수는 대학 내부의 창업지원 체계를 언급했다. 그는 "2023년 교수 창업자 1365명 가운데 휴직을 하고 창업에 전념한 교수는 4명에 불과했고, 대부분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는 겸직 창업이었다"며 "겸직을 전제로 한 현재의 교원 창업 방식으로는 기업 성장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대학 산학협력단과 창업지원 조직 역시 계약과 행정 관리에서 벗어나 실제 창업팀 구성과 고객 발굴을 돕는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학생 창업의 경우에도 딥테크 기업이 3년 안에 성패를 가리기 어려운 만큼 창업휴학 기간을 현실에 맞게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대학 내 창업을 위한 정부 조직을 둘러싸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한세광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대학 창업과 기업 성장을 장기적으로 지원할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반면 김 교수는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 교육·과학기술·창업 담당 부처와 대학이 각자의 역할을 실제 예산과 제도에 반영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대학이 창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관련 조직과 인력 대부분을 정부 사업비에 의존하는 부분도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