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모닥불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영국 연구진은 초기 인류가 불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언어가 발달했을 거라고 봤다. /세인트앤드루스대

인류는 언제부터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을까.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원시적인 언어가 먼저 생긴 뒤 이를 이용해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라는 추정이 많았다.

최근 이 순서를 뒤집는 가설이 등장했다. 초기 인류가 불을 사용하면서 밤에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이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언어가 복잡하게 발달했다는 것이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캐서린 호베이터 교수와 미국 다트머스대 너새니얼 도미니 교수는 이런 내용의 연구를 최근 국제 학술지 '영국왕립학회보 B'에 발표했다. 영장류 의사소통, 인류학, 신경과학 연구 등을 종합해 불과 언어의 진화를 하나의 과정으로 설명했다.

언어의 기원을 설명하는 기존 학설은 대개 사냥을 함께하거나 도구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등 실용적인 필요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연구진은 침팬지 같은 유인원이 복잡한 언어 없이도 협력해 사냥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초기 인류 역시 소규모 집단에서 먹이를 구하거나 이동하는 일에는 복잡한 언어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이야기'는 다르다고 봤다. 이미 지나간 일이나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 멀리 떨어진 사람과 장소까지 표현하려면, 단순한 몸짓보다 훨씬 추상적이고 복잡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려는 필요가 언어를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발전시킨 원동력이 됐을 것이란 가정이다.

연구진은 특히 불의 사용을 중요하게 봤다. 불은 사람들의 하루 활동 시간을 약 4시간 늘려준다. 모닥불이 하루 일과가 끝난 사람들이 주위에 둘러앉아 밤늦게까지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낸다. 연구진은 "모닥불 앞에 사회 구성원들이 모여 그날 각자 겪은 일을 나누고 내일 할 일을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꽃의 깜빡임이 의사소통 방식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계속 흔들리는 불빛 아래서는 몸짓을 정확히 알아보기 어렵다. 반면 말소리는 어둠의 영향을 덜 받는다. 의사소통의 중심이 이 때문에 몸짓에서 말소리로 옮겨 갔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모닥불이 1초에 두세 번꼴로 깜빡이는데, 이는 사람이 말할 때 입을 움직이는 박자와 비슷하다고도 했다.

연구진은 다만 이런 해석이 진화 시나리오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해석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인간이 어떻게 '이야기하는 유인원'이 됐는지를 데이터로 검증할 수 있는 가설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