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성규·Graphic News

지구를 내려다보려고 만든 미국 군사용 정찰위성의 '눈'이 14년 만에 우주를 올려다보는 최첨단 우주망원경으로 변신했다. 지난달 30일 발사된 미 항공우주국(NASA)의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이 그 주인공이다.

주경 지름은 허블 우주망원경과 같은 2.4m이지만, 한 번에 볼 수 있는 우주의 범위는 100배 이상 넓다. 앞으로 외계행성 약 10만개를 찾고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추적하는 임무를 맡는다.

로먼은 현재 지구에서 약 150만㎞ 떨어진 제2라그랑주점(L2)을 향하고 있다. 장기간 우주 관측에 적합한 곳으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도 이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로먼은 약 3개월간 이동과 장비 점검을 거쳐 본격적인 관측에 들어간다. 총 43억달러(약 6조원)가 투입됐다. 군사 기술의 민간 전환과 수차례의 사업 폐기 위기 등을 딛고, 미국 천문학계의 오랜 구상 끝에 지금의 로먼이 나왔다.

◇'스파이 위성 눈'이 NASA로

넓은 우주를 한꺼번에 훑는 우주망원경은 미국 천문학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미국 천문학계는 2010년 향후 10년간 추진할 최우선 대형 우주 프로젝트로 '광시야 적외선 탐사망원경(WFIRST)'을 선정했다. 넓은 하늘을 적외선으로 관측해 우주의 팽창을 가속하는 암흑에너지와 외계행성을 연구한다는 계획이었다.

뜻밖의 전환점은 2012년 찾아왔다. 미국 첩보 위성을 운용하는 국가정찰국(NRO)이 사용하지 않게 된 지름 2.4m급 망원경 장비 두 세트를 NASA에 넘긴 것이다. 허블과 같은 크기의 '눈'이었다.

NASA는 망원경을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대신 WFIRST 설계를 이 장비에 맞춰 다시 짰다. 당초 1.3~1.5m급으로 계획했던 주경이 2.4m로 커지면서 더 많은 빛을 모으고, 더 희미하고 작은 천체를 구별할 수 있게 됐다. 군사용 정찰 장비가 수십억 개의 은하를 관측하는 과학 장비의 핵심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세 차례 폐기 위기 넘고 9개월 일찍 발사

로먼은 예산 문제로 사라질 뻔한 위기도 여러 차례 겪었다. 미국 천문학계에선 WFIRST를 최우선 임무로 꼽았지만, 개발비가 계속 불어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부담이 컸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제출한 2019·2020·2021 회계연도 예산안에는 세 차례 연속 WFIRST 예산을 없애고 사업을 종료하는 방안이 담겼다. 하지만 미국 의회는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며 매번 예산을 되살렸다. 개발 막바지인 2026 회계연도에도 대규모 예산 삭감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정작 제작은 예정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NASA는 2025년 말 로먼 제작을 끝내고 발사 때의 진동, 소음, 우주의 극한 온도를 견디는 시험을 마쳤다. 최종 발사 준비 시한은 2027년 5월까지였지만, 로먼은 지난달 30일 우주로 향했다. 세 차례 폐기 위기를 넘긴 우주망원경이 오히려 공식 시한보다 약 9개월 일찍 발사된 것이다.

NASA는 2020년 WFIRST의 이름을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으로 바꿨다. 낸시 로먼은 NASA 최초의 수석 천문학자다. 우주에서 천문 관측을 한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부터 지상 대기의 방해를 받지 않는 우주망원경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NASA의 우주 천문학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훗날 허블로 이어지는 계획을 추진해 '허블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허블만큼 선명하게, 100배 넓게

우주망원경은 저마다 역할이 다르다. 허블이 한 천체를 정밀하게 보는 '망원렌즈'라면, 지름 6.5m 주경을 가진 제임스 웹은 '현미경'에 가깝다. 로먼은 허블급 화질을 가진 '초광각 카메라'다. 2.4m 주경으로 광대한 하늘을 빠르게 훑는다.

로먼의 핵심 장비는 3억화소짜리 '광시야 관측기(WFI)'다. 18개의 적외선 검출기를 이어 붙여 한 번에 보름달보다 넓은 하늘을 담는다. 허블과 비슷한 적외선 해상도와 감도를 유지하면서 한 번에 보는 면적은 100배 이상 넓고, 같은 넓이의 하늘을 조사하는 속도는 최대 1000배 빠르다. 첫 5년 동안 허블이 첫 30년간 촬영한 것보다 50배 이상 넓은 하늘을 관측할 예정이다.

목표도 '우주의 전수 조사'에 가깝다. 수십억 개의 은하를 관측해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이 우주에 어떻게 퍼져 있는지 지도를 그리고, 우주 팽창의 역사를 추적한다. 외계행성 탐색도 핵심 임무다. NASA는 로먼 관측으로 약 10만개의 외계행성이 새롭게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확인한 외계행성은 6300여 개다. 로먼에게 외계행성 연구의 규모 자체를 바꿔놓을 임무가 주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