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녹는 것은 필연이다. 결국은 물이 된다. 문제는 속도다.
1986년 이후 '현존하는 최대 빙산'으로 꼽혔던 A23a가 남극에서 최근 완전 소멸했다. 미국 국립빙상센터(NIC)에 따르면, A23a는 최근 몇 년 사이 녹고 부서지기를 거듭한 끝에, 지난 3월 '더는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너무 작게 쪼개져, 위성으로도 관측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는 뜻이다.
쉽게 녹아 사라질 덩치는 아니었다. 한때는 무게 약 1조t, 면적 3672㎢에 달했다. 서울 면적의 6배다. 워낙 거대해 '메가버그(megaberg)'라는 별명이 붙었다.
A23a는 그러나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은 데다 최근 몇 년 사이 따뜻한 남극 순환류에 만나면서 급격히 녹기 시작했다. 작년에 덩치가 절반으로 줄었고, 올해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면서 결국 자취를 감췄다.
최근 네팔 사태는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의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빙하와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고 무너지며 생긴 참사였다. 빙산과 빙하가 녹는 건 자연적 현상이다. 최근의 빙산과 빙하 융해 속도는 그러나 학계 예측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2021년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당시 전 세계 빙하 부피가 2100년까지 25~50% 정도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연구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러나 빙산과 빙하는 IPCC 예상보다 더 급격히 녹아내리고 있다. 지금 같은 속도가 계속된다면 2100년엔 46~54%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알프스 지역에선 75%가 넘게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A23a처럼 위용을 자랑했으나 끝내 흔적조차 보기 어렵게 된 빙하·빙산 사례가 계속 나오는 이유다.
◇1조t짜리 빙산이 소멸하다
A23은 본래 서남극 대륙의 필히너 론네 빙붕에 있었다. 1986년 이곳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후 30년 넘게 남극 대륙 앞바다인 웨델해에 머물렀다. 빙산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2020년부터다. 해저에 단단히 박혔던 몸체가 조금씩 녹으면서 바다를 표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대서양을 돌기 시작해, 이후엔 영국령 사우스조지아섬 주변을 떠다녔다. 2024년엔 '테일러 기둥'으로 불리는 소용돌이 물살에 갇혀 3개월을 넘게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고, 이후 계속 부서졌다.
지난해 중순엔 면적이 절반쯤 줄어들면서 '세계 최대 빙산' 타이틀을 빼앗겼다. 지난 3월엔 '빙산'으로서의 공식적 지위마저 잃었다. 너무 작아져 미 국립빙상센터가 공식 추적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지난 4~5월엔 남반구 수온이 상승하면서 남은 잔해마저 완전히 녹았다. A23a는 남극해 일부가 됐다.
영국 남극조사국(BAS)은 대형 빙산이 이렇게 해체되고 융해되는 과정에서 차가운 담수가 배출되면서 해양 생태계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주변 수역의 생물 다양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곳곳에서 '빙하 장례식'
빙하 장례식도 각지에서 잇따른다. 2019년 8월 아이슬란드 오크 화산에선 때아닌 장례식이 열렸다. 한때 오크 산 꼭대기의 대부분을 덮었다는 700년 된 오크예퀴들(Okjokull·오크 산의 빙하라는 뜻) 빙하 얼음이 2019년엔 1㎢도 남지 않게 되면서다.
말 그대로 녹아 증발한 빙하를 기억하기 위해, 미국 텍사스주 라이스대학 소속 인류학자인 시멘 하우와 도미닉 보이어는 빙하 장례식을 열었다. 사람들은 추모 동판을 세우고, 동판에 새긴 비문을 낭독했다. 추도문 제목은 '미래로 보내는 편지'였다. 이들은 "오크예퀴들 빙하는 아이슬란드에서 처음 빙하의 지위를 잃었다. 앞으로 200년 사이 아이슬란드의 모든 빙하가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리려고 한다"고 했다. 추도문 마지막엔 당시 이산화탄소 농도인 '415ppm'을 적었다.
비슷한 시기 스위스 북동부 글라루스 알프스 산맥에서도 또 다른 빙하 장례식이 열렸다. '피졸(Pizol)' 빙하의 소멸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1850년쯤 피졸 빙하는 부피 1500만㎥의 덩치를 자랑했다. 올림픽 수영장 6000개 분량이다. 알프스 계곡을 채우고도 남아 빙하 호수까지 이어졌다. 2019년쯤엔 그러나 99%가량이 사라졌다. 특히 2006년 이후부터 빠르게 녹아 사라졌다고 한다. 2019년 9월 알프스엔 환경 단체 회원과 지역 주민 250명이 모였다. 사람들은 검은 옷을 입고, 빙하가 사라진 땅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네팔 대홍수가 시작된 네팔 랑탕 유역에서도 빙하 장례식이 열린 적이 있다. 지난해 5월 네팔의 얄라 빙하 앞엔 빙하학자들과 지역 주민 50여 명이 모였다. 1970년대에 비해 66%가량이 녹아버린 얄라 빙하를 보며 장례식을 연 것이다. 얄라 빙하는 히말라야에 있는 수만 개의 빙하 중에서도 학계가 주목하고 10년 넘게 크기를 관측해 온 '히말라야 빙하의 기준점'으로 꼽힌다. 아이슬란드 오크예퀴들 빙하 추모비의 비문을 쓴 이들 중 한 명이 얄라 빙하 비문도 썼다. 비문 끝엔 당시 이산화탄소 농도(426ppm)도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