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네팔과 중국 국경에서 암반과 빙하가 한꺼번에 무너진 뒤 대규모 토석류와 홍수가 이어져 큰 피해를 낸 가운데, 이보다 1년여 앞서 북극에서도 지진을 계기로 암석 사태와 빙하 붕괴가 잇따랐다. 연구진은 장기간의 온난화로 영구동토층이 약해지면서 산사면이 지진 충격에 더 취약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 헬름홀츠 킬 해양 연구 센터(GEOMAR), 노르웨이 지질조사국 등 국제 연구진은 지난해 3월 10일 노르웨이령 얀마옌섬에서 발생한 규모 6.5 지진과 이후 나타난 지형 변화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8일 발표했다.
얀마옌은 그린란드에서 동쪽으로 약 500㎞, 아이슬란드에서 북쪽으로 약 550㎞ 떨어진 북대서양의 화산섬이다.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활화산인 베렌베르크가 있으며 화산 정상부에서 해안까지 여러 빙하가 이어져 있다.
지진이 발생한 후 베렌베르크 셰룰프 빙하 위쪽의 가파른 화산암 사면이 무너졌고, 대량의 화산암과 토사가 떨어져 나와 빙하 표면을 뒤덮고 해안 가까이까지 퍼졌다. 인근 바이프레히트 빙하에서는 지진 충격으로 빙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칼빙(calving)' 현상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지진 관측자료와 고해상도 위성영상, 초저주파 관측, 기온·기후 기록 등을 종합해 지진 직후 상황을 재구성했다. 분석 결과 암석사태는 본진이 발생한 뒤 수분 안에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연구진은 지진만으로는 이번 대규모 붕괴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봤다. 얀마옌은 원래 지진 활동이 활발한 곳이지만 지난 40년간 위성자료에서는 이번과 비슷한 규모의 지진 유발 암석사태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 지진이 발생하기 전부터 사면이 점차 약해지고 있었다는 흔적이 발견됐다. 2019년부터 2024년 사이 붕괴 지점에서는 여러 차례 소규모 암석 붕괴가 발생했고, 장기간 기온자료에서도 1990년대 후반 이후 이례적으로 더운 여름날이 늘어나는 등 온난화 경향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런 변화가 영구동토층을 약화시켰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영구동토층은 최소 2년 이상 계속 얼어 있는 땅이나 암반이다. 특히 암석 틈에 얼어 있는 물은 갈라진 바위를 붙잡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기온이 올라 얼음이 녹으면 암반의 결합력이 떨어져 사면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 연구진은 이처럼 온난화로 이미 취약해진 사면에 지진의 강한 흔들림이 가해지면서 대규모 붕괴로 이어졌다고 해석했다.
이번 사례는 하나의 자연현상이 다른 재해를 잇따라 촉발하는 '연쇄 재해'가 북극에서도 기후변화와 맞물려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진 자체는 기후변화와 무관하지만 온난화가 산사면을 약화시켜 같은 규모의 지진에도 더 큰 지질재해가 발생할 조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최근 네팔-중국 국경에서 발생한 참사는 암반과 빙하 붕괴가 직접적인 출발점이었고, 이후 토석류와 홍수로 피해가 확대됐다는 점에서 얀마옌 사례와 차이가 있다"면서도 "두 사례 모두 온난화와 영구동토층 약화가 빙하와 산사면의 안정성을 떨어뜨리고, 여러 재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참고 자료
PNAS(2026), DOI: https://doi.org/10.1073/pnas.261721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