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 오랫동안 싸운 면역세포가 완전히 지치지 않도록 막았더니 뇌종양 치료 효과가 높아졌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비타민 A에서 만들어지는 물질을 이용해 면역세포의 탈진을 늦추는 방식이다.
KAIST는 이흥규 생명과학과 교수팀이 서울성모병원·건양대 의대 연구진과 함께 비타민 A 유래 물질인 '올트랜스 레티노산(ATRA)'이 뇌종양 속 면역세포의 탈진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8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신호전달 및 표적치료'에 지난달 26일 게재됐다.
난치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은 수술이나 방사선·항암 치료를 받아도 재발이 잦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가 종양 안에서 장기간 싸우다 보면 점차 기능을 잃는 '면역세포 탈진'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심하게 지친 면역세포에서는 기존 면역항암제도 충분한 효과를 내기 어렵다.
연구진은 이미 지친 면역세포를 다시 활성화하는 대신, 애초에 면역세포가 완전히 지치는 것을 막는 방법을 연구했다. 실험실에서 뇌종양과 비슷한 환경을 만든 뒤 면역세포에 ATRA를 넣었더니, 면역세포가 공격 능력을 잃는 비율이 줄고, 암세포를 공격하는 데 필요한 물질의 생성도 늘었다.
생쥐를 이용한 뇌종양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ATRA를 투여한 생쥐는 종양 속 면역세포의 수와 기능이 개선됐고 종양도 감소했다. 특히 재발성 뇌종양 모델에서는 기존 면역항암제만 투여했을 때보다 ATRA를 함께 사용했을 때 종양 억제 효과가 커지고 생존 기간도 늘어났다.
기존 면역항암제가 면역세포에 걸린 '브레이크'를 풀어주는 치료라면, ATRA는 면역세포가 브레이크를 풀기 전에 완전히 지쳐버리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사람의 뇌종양 환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ATRA와 관련된 유전자 활동이 활발한 환자일수록 면역세포 탈진 정도가 낮고 생존 결과가 좋은 경향이 나타났다. 세포·생쥐 실험을 통해 확인된 치료 효과가 실제 환자에게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지는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해야 한다.
이흥규 교수는 "활성형 비타민 A 신호가 면역세포가 완전히 지치는 것을 막고 항암 기능을 유지하도록 돕는 원리를 밝혔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