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달리3

비만·당뇨병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는 성분 '세마글루타이드'가 나이 든 생쥐의 신체·대사·인지 기능을 개선하고 수명까지 연장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세마글루타이드는 비만 치료제 '위고비'와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의 주성분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생후 20개월 된 암컷 생쥐에게 세마글루타이드 또는 생리식염수를 투여하고 건강 상태와 수명을 관찰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3일 발표했다.

세마글루타이드는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의 작용을 모방하는 약물이다. GLP-1은 식사 뒤 뇌에 포만감을 전달해 식욕을 낮추고, 혈당이 올라가면 인슐린 분비를 돕는다. 세마글루타이드는 이 호르몬이 작용하는 GLP-1 수용체를 자극해 음식 섭취와 혈당을 조절한다.

최근에는 GLP-1 계열 약물이 체중 감량을 넘어 심혈관·신장·간 질환 위험을 낮추고 신경퇴행성 질환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이 같은 효과가 단순히 체중이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2차적 현상인지, GLP-1 신호 자체가 여러 장기에 직접 작용한 결과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연구진은 세마글루타이드가 생쥐의 건강과 수명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다. 실험 결과, 세마글루타이드를 지속적으로 투여한 생쥐의 중앙수명은 834일로, 대조군의 742일보다 92일, 약 12% 길었다. 중앙수명은 실험 대상 가운데 절반이 사망하고 절반이 살아 있는 시점의 수명을 뜻한다.

수명뿐 아니라 활동성과 인지 기능도 좋아졌다. 세마글루타이드를 3개월간 투여한 생쥐는 새로운 환경에서 더 활발히 움직이고 주변을 탐색했다. 공간 기억과 혈당 조절 능력도 개선됐다.

세마글루타이드 투여군에서는 만성 염증과 세포 노화,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 줄기세포 기능 저하 등 여러 노화 지표도 개선됐다. 특히 근육에서는 세포의 에너지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 관련 유전자 활동과 에너지 생산이 증가해, 노화로 떨어진 근육 기능이 일부 회복됐을 가능성을 보였다. 뇌에서는 기억과 학습에 중요한 해마의 '치상회'에서 신경줄기세포 활동과 새로운 신경세포 생성 관련 지표가 증가했다.

연구진은 이런 변화가 단순히 덜 먹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인지도 확인했다.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한 생쥐는 먹는 양이 약 24% 감소했는데, 이에 비슷한 수준으로 칼로리 섭취를 제한한 생쥐와 일부 건강·노화 지표를 비교했다. 실제 두 집단에서 비슷한 변화가 일부 나타났지만, 탐색 행동과 공간 기억, 혈당 조절 등 지표에서는 세마글루타이드 투여군이 칼로리 제한군보다 더 나은 결과를 보였다.

연구진은 "세마글루타이드의 효과 가운데 일부는 칼로리 섭취가 줄어든 것과 관련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든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다"며 "GLP-1 수용체를 자극하는 작용 자체가 노화와 관련된 생리 기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열 경희대 의과대학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세마글루타이드가 체중을 줄이는 효과를 넘어, 몸이 영양과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조절하는 과정에 영향을 줘 노화를 늦출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결과를 세마글루타이드가 사람의 노화를 늦추거나 수명을 늘린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 연구진은 "GLP-1 계열 약물이 실제 사람의 노화와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려면 장기간 임상시험이 필요하다"며 "비만이나 노화와 관련된 질환이 없는 고령자에게도 효과가 있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도 "이번 결과만 보고 근육이 부족한 마른 고령자의 노화를 늦추기 위해 세마글루타이드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고령자를 대상으로 오랫동안 약을 투여했을 때 어떤 효과와 부작용이 나타나는지 임상시험과 실제 진료 자료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참고 자료

Nature(2026),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6-109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