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온·염분·수심 측정 장비를 머리에 부착한 웨델물범. 과학자들은 물범을 통해 확보한 측정 정보로 남극 심해로 흐르는 저층수의 변동 상황을 확인했다./극지연구소

남극에 사는 물범이 직접 바다의 온난화 현상을 확인했다. 겨울에 수온이 높은 물이 유입돼 해양 순환 펌프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한 것이다.

극지연구소는 "남극 웨델물범 수십 마리가 수집한 관측 자료를 활용해, 겨울철에도 상대적으로 따뜻한 바닷물이 남극 로스해 대륙붕 안쪽까지 깊숙이 유입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구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지구물리학 연구 레터'에 게재됐다.

남극 대륙에서는 차갑고 무거운 바닷물이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바로 남극 저층수이다. 남극 주변 바다에서 바닷물이 얼어붙는 과정에서 염분이 빠져나와 밀도가 높아졌다. 남극 저층수는 전 세계 심해를 순환시키는 '해양 순환 펌프' 역할을 한다.

◇물범이 남극 저층수 변동 관측

극지연구소 이원상 박사 연구진은 남극 저층수의 20~25%가 만들어지는 로스해를 연구원 대신 그곳에 사는 웨델물범이 조사하도록 했다. 해양 순환을 이해하려면 사계절 관측을 해야 하지만, 겨울철 로스해는 바닷물이 얼어붙은 해빙(海氷)으로 덮여 선박의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2021~2023년 로스해 테라노바만 주변에서 웨델물범 64마리에 소형 위성 중계 CTD(수온·염분·수심 측정 장비)를 부착했다. 물범이 잠수와 부상을 반복할 때마다 위성으로 전송된 데이터는 3년간 총 2만 2661건으로, 로스해 대륙붕 전역에 대한 사계절 해양 환경 정보를 담고 있다.

물범이 수집한 대규모 데이터를 인공지능(AI) 기계 학습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여름철 3가지, 겨울철 4가지의 서로 다른 해양 환경 유형이 확인됐다. 특히 그동안 여름철에만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던 온난 심층수가, 두꺼운 얼음이 덮인 겨울(4~7월)에도 수심 100~300m의 해저 골짜기를 따라 대륙붕 안쪽까지 지속적으로 침투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논문 공동 교신 저자인 나지성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선박 접근이 불가능했던 겨울철 남극 해빙 아래 미지의 영역을 인공지능과 웨델물범의 협업으로 규명할 수 있었다"며 "향후 남극저층수 형성 변화와 기후변화 예측 모델의 정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웨델물범둘이 소형 위성중계 CTD(수온·염분·수심 측정 장비)를 부착하고 로스해를 헤엄치는 모습./극지연구소

◇해양 순환 펌프 약화로 생태계 위협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로 해양 순환 펌프가 계속 약화되고 있다고 본다. 기온 상승으로 남극에서 빙하(氷河)가 녹아 밀도가 낮은 민물이 대량으로 바다에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극에서 내륙에 내린 눈이 쌓여 굳으면 빙하가 된다. 이 빙하가 천천히 흘러가 바다 위로 퍼진 것이 빙붕(氷棚)이다. 바닷물의 염분과 밀도가 낮아지면서 무거운 물이 가라앉는 침강 현상이 방해를 받는다.

논문 공동 교신 저자인 이원상 책임연구원은 "대륙붕 안쪽으로 들어온 따뜻한 심층수가 차갑고 짠 고염 대륙붕수와 섞이면 온도는 올라가고 염도와 밀도는 낮아져 가라앉는 힘이 약해진다"며 "이는 전 지구 심해 순환 펌프를 약화시키고 남극 빙붕의 하부 용융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남극 심층 해류가 2050년까지 최대 40%까지 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심해 해양 순환 펌프가 약해지면 생태계가 직격탄을 받는다. 남극 저층수는 심해로 가라앉으면서 표층의 산소를 심해로 운반하고 영양염류도 순환시킨다. 해양 순환 펌프가 약해지면 심해 생태계에 산소와 영양분 공급이 힘들어진다. 또 바다가 흡수하던 열과 이산화탄소 양도 줄어들어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번 연구는 해양수산부 연구 과제 '급격한 남극 빙상 용융에 따른 근미래 전 지구 해수면 상승 예측 기술 개발'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신형철 극지연구소 소장은 "이번 연구는 첨단 기술과 데이터 과학이 결합해 극지 연구의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한 모범 사례"라며 "극지연구소는 앞으로도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글로벌 극지 해양 관측망 구축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Geophysical Research Letters(2026), DOI: https://doi.org/10.1029/2025GL1197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