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합법적으로 키운 사업을 갑자기 접으라니요. 문제가 있다면 그 부분을 규제해야지 사업 자체를 못 하게 막으니 당황스럽습니다."
선재원(38) 메라키플레이스 대표를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운영하는 '나만의닥터'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 1위 서비스다. 월간활성이용자(MAU)는 올해 6월 기준 50만명에 달한다. 지난해 6월 19만명에서 1년 만에 2.6배가 됐다. 전국 약국 2만여 곳 가운데 1만6000곳이 최소 한 번 이상 나만의닥터를 통해 발급된 처방전을 받았을 만큼 급성장했다. 승승장구하던 이 플랫폼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경쟁사가 아니라 뒤늦게 등장한 규제였다.
지난달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의약품 도매업 겸업을 금지하는 이른바 '닥터나우 방지법(약사법 개정안)'이 통과하면서 나만의닥터도 직격탄을 맞았다. '닥터나우'는 나만의닥터와 더불어 비대면 진료 플랫폼 분야를 대표하는 서비스다. 의약품 도매는 현재 이 두 서비스의 핵심 수입원이지만, 1년 뒤 법 시행 전까지 이 사업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업계에선 이 법을 두고 "혁신을 죽이는 '제2의 타다 금지법'"이라는 말이 나온다.
◇"5년 동안 규제 17번 바뀌어"
선 대표는 "처음 의약품 도매업을 시작한 건 비대면 진료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환자가 비대면 진료를 통해 처방전을 받아도 해당 약을 보유한 약국을 찾지 못하는 '약국 뺑뺑이'가 잦았다. 그래서 자주 처방되는 의약품을 약국에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러나 플랫폼이 의약품 유통까지 맡을 경우 특정 약국으로 환자를 유도하는 등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다며 겸업 자체를 막았다. 선 대표는 "일탈 행위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는 동의한다"며 "그럼 문제가 되는 행위를 규제해야지 합법이었던 사업 자체를 갑자기 막는다면, 대체 누가 새로운 시도를 하겠느냐"고 했다.
선 대표가 더 큰 문제로 보는 것은 개별 규제보다 '정책의 불안정성'이다. 그는 "창업하고 5년 동안 비대면 진료 정책이 크게 다섯 차례, 하위 시행령이나 가이드라인까지 합치면 20번 가까이 바뀌었다"며 "규제 대응에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서, 정작 혁신에 투자할 힘을 다른 데 쓰게 만든다"고 했다.
가장 충격이 컸던 순간은 2023년 코로나 위기 단계가 낮아지면서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시범사업으로 전환됐을 때다. 갑자기 까다로운 조건이 여럿 생기면서 서비스 유지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 됐다. 선 대표는 "3개월 동안 트래픽이 30분의 1로 떨어져 폐업을 고려할 상황까지 갔었다"고 했다. 이후 비대면 진료는 야간·휴일 초진 허용, 의정 갈등에 따른 비대면진료 확대 등 우여곡절을 거쳐 지난해 12월에야 처음 법제화될 수 있었다.
◇법제화 후에도 "악마는 디테일에"
법제화는 됐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지금도 비대면으로 진료를 받은 뒤 환자가 직접 약국을 찾아가 약을 받아야 한다. 막상 찾아간 약국에 처방약이 없어 다시 다른 약국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선 대표는 "진료는 비대면으로 보면서 약은 대면으로 받으라는 건 서비스에서 치명적 결함"이라며 "실제 이용자에게 가장 많이 들어오는 문의도 '약 배송은 왜 안 되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최근 약 배송 확대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조금 희망을 봤다"고 했다. 다만 실제 허용 여부와 범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약사 단체 등의 반발도 거세다. 선 대표는 그래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법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더라도 하위 규제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서비스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쟁점이 처방 일수다. 현재는 비대면 진료 한 번에 최대 90일 치까지 처방할 수 있는데 이를 3일이나 7일 등으로 크게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처방 일수가 일주일 안팎으로 줄면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자는 지금 한두 달에 한 번 받던 진료와 처방을 매주 되풀이해야 한다. 선 대표는 "그렇게 되면 현재 비대면 진료 이용자의 상당수가 서비스를 쓰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원격 의료 반대하던 공보의가 비대면 진료 앱 창업
선 대표는 원래 비대면 진료의 원조 격인 '원격 의료' 반대편에 서 있던 의사였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공중보건의로 일할 때는 원격 의료 반대 시위에도 참여했다. 그는 "당시에는 환자와 의사가 직접 만나 신뢰 관계를 쌓는 것이 더 좋은 의료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생각이 달라진 것은 의료 현장을 직접 겪으면서부터였다. 그는 "영종도에서 근무할 때 멀리 사는 자녀가 고령인 부모의 약을 받기 위해 보건소까지 오가는 모습을 자주 봤다"며 "이런 불편을 더 좋은 방식으로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공보의 시절 참여한 코딩 동아리였다. 컴퓨터공학과, 경영대 등 다른 전공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즈니스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이후 컨설팅 기업 맥킨지, 벤처캐피털 블루포인트파트너스를 거치면서 경영과 투자 경험을 쌓은 그는 2021년 창업에 나섰다. 선 대표는 "의사는 한 명 한 명에게 큰 영향을 주는 직업이지만 저는 더 많은 사람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싶었다"며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는 비즈니스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의 최종 목표는 나만의닥터를 '헬스케어 수퍼앱'으로 키우는 것이다. 비대면 진료뿐 아니라 대면 진료 예약, 의료 AI 상담 등 건강과 관련한 필요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앱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의사 되려고 공부한 게 아깝지 않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지금도 건강 문제를 다루는 의사로서 정체성이 크고, 잘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