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에 대응해 개발했던 초정밀 정찰 위성이 망원경의 방향을 우주로 틀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30일 오전 7시 26분(한국 시간 오후 8시 26분)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하는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이다. 나사는 미 국가정찰국(NRO)이 만들던 정찰 위성을 넘겨받아 우주망원경으로 개조했다.

군용 개발이 중단됐다고 폐기하는 대신 과학을 택한 재활용의 성과는 이미 나타났다. 나사는 천문 연구 프로그램으로는 전례가 없이 로먼 우주망원경의 일정이 앞당겼다. 원래 발사 일정은 2027년 5월이었다. 제러드 아이작먼(Jared Isaacman) 나사 국장은 지난 4월 기자회견에서 "로먼 우주망원경과 같은 성공 사례를 만든 마법 같은 요소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상에서 최종 조립된 로먼 우주망원경. 길이 12m, 폭 4m로 대형 트레일러와 비슷한 크기이다. 허블 우주망원경과도 비슷하다./NASA

◇9·11 이후 개발한 정찰 위성을 개조

로먼의 시발점은 미국 국립과학공학의학한림원(NASEM)이 2010년에 발표한 '10년 주기 조사(Decadal Survey)'였다. 향후 10년간 미국이 추진할 우주·지구과학 연구의 우선순위와 임무 방향을 결정하는 보고서다. 당시 보고서는 암흑 에너지와 암흑 물질을 연구할 우주망원경을 우선순위로 제시했다.

1998년 천문학자들은 먼 은하에서 폭발하는 Ia형 초신성을 관찰하다가 예상보다 어둡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우주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팽창 가속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우주를 밀어내는 암흑 에너지라는 개념이 나왔다.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연구이다.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물질은 5%에 불과하고 70%는 암흑 에너지라고 본다. 나머지 25%는 빛을 내지 않으면서 물체를 끌어당기는 암흑 물질로 불린다.

나사는 바로 광시야 적외선 탐사 망원경(WFIRST)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지름 1m급 거울을 가진 우주망원경으로 하늘 전체를 관측해 우주 팽창의 추이를 조사하려고 했다. 하지만 우주망원경 임무에 외계행성 탐색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나사는 이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 개발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 터라 두 가지 요구를 모두 충족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때 국가정찰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속도를 높이던 차세대 정찰 위성 '미래 영상 체계(Future Imagery Architecture)'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허블 우주망원경과 같이 지름 2.4m 거울을 장착한 이 위성은 지상의 커피잔보다 작은 물체까지 관측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일정 지연과 예산 초과로 2005년에 개발이 중단됐다.

국가정찰국은 2012년 이미 개발된 정찰 위성 부품들을 나사에 기증했다. 정찰 위성에서 빛을 모으는 반사 거울은 나사가 당초 암흑에너지 연구용으로 잡았던 것보다 두 배나 커, 외계행성 추적까지 두 가지 임무를 동시에 맡을 수 있었다. 나사는 2016년부터 광시야 적외선 탐사 망원경 개발 사업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그동안 43억달러를 들여 로먼 우주망원경을 완성해 이번에 발사를 앞두고 있다.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 원리./자료 NASA, 챗GPT 생성 이미지

◇허블보다 시야 100배 넓고, 신속 관측

로먼 우주망원경의 크기는 길이 12m, 폭 4m로 허블 우주망원경과 비슷하다. 반사 거울의 지름도 허블과 같다. 하지만 관측 능력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로먼은 허블보다 시야가 최소 100배 넓은 300메가픽셀 카메라를 탑재했다. 로먼의 광시야 관측기(WFI)는 대형 적외선 검출기 18개를 모자이크처럼 배열했다.

간단히 말해 같은 크기의 망원렌즈 뒤에 로먼은 허블보다 훨씬 큰 이미지 센서를 단 셈이다. 렌즈가 같아도 센서가 넓으면 한 장의 사진에 훨씬 넓은 영역이 들어온다. 로먼은 개별 천체를 허블보다 100배 크게 또는 선명하게 보지 않고, 대신 허블급으로 세밀한 영상을 100배나 넓은 범위에서 빠르게 얻는다는 말이다. 나사가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하면 1세기가 걸릴 정도로 넓은 은하를 로먼으로는 한 달이면 끝난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로먼은 태양계 밖에서 외계 행성을 찾는 과제도 맡았다. 지금까지 찾은 외계 행성은 6000여 개인데, 로먼 우주망원경은 3중 추적 기술로 지금보다 40배나 더 많이 찾을 수 있다고 나사는 밝혔다. 로먼 프로젝트의 수석 과학자인 줄리 맥네어리(Julie McEnery) 박사는 "태양계 밖 행성들에 대해 사상 최대 규모의 인구 조사를 진행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보통 외계 행성은 별 표면 통과(transit) 현상을 이용해 찾는다. 별 앞으로 행성이 지나가면 빛을 일부 차단한다. 태양이 사라지는 일식처럼 지구에서 보기에 별이 잠시 어두워지는 것을 포착해 외계 행성의 존재를 확인한다. 하지만 별 앞을 질량이 큰 행성이 지나가야 이런 방식으로 포착하기 쉽다.

로먼은 지구나 화성 크기의 외계 행성도 찾기 위해 미세 중력 렌즈 기법도 활용한다. 행성의 중력이 먼 별에서 나온 빛을 굴절시키고 증폭시키는 현상을 포착해 역으로 행성을 찾는 방법이다. 또 먼 별의 빛을 차단하는 코로나그래프도 장착해 행성의 희미한 빛도 관찰할 수 있다. 지상의 천체망원경에는 전부터 쓰던 방식이지만 우주망원경에 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첫 수석 천문학자였던 낸시 그래이스 로먼 박사가 컴퓨터 계측기들이 줄지어 있는 벽을 올려다보고 있다. 로먼은 허블 우주망원경과 같은 궤도 관측소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허블의 어머니'로 불렸다./NASA

◇허블 어머니 이름 달고 제임스 웹 자리에

로먼 우주망원경은 1960년대 나사 최초의 수석 천문학자를 맡았던 낸시 그레이스 로먼(Nancy Grace Roman·1925~2018) 박사의 이름을 땄다. 로먼 박사는 지구 궤도에서 우주를 관측하는 우주망원경 프로그램을 세우는 데 기여해 '허블 우주망원경의 어머니'로 불린다. 지상에는 칠레의 베라 루빈 천문대가 여성 천문학자의 이름을 땄지만, 우주망원경에 여성 과학자 이름이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먼 우주망원경은 발사 후 지구에서 태양 반대쪽으로 약 150만㎞ 떨어진 제2라그랑주점(L2)으로 향한다. 지구와 달 사이(38만5000㎞)보다 약 4배 먼 거리다. L2는 우주 관측에 최적인 지점이다. 이곳은 태양·지구의 중력과 우주망원경의 원심력이 균형을 이뤄 빛의 왜곡이 없다. 특히 태양이 항상 지구 뒤에 가려져 햇빛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L2에는 이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2022년부터 자리 잡고 우주를 관측하고 있다. 그렇다고 로먼 우주망원경과 임무가 중복되지는 않는다. 제임스 웹이 멀리 있는 천체 하나를 당겨 자세히 들여다보는 초망원 렌즈라면, 로먼은 하늘의 넓은 부분을 한꺼번에 찍는 초광각 카메라이기 때문이다.

로먼 우주망원경은 아직도 정체를 알지 못하는 암흑 에너지, 암흑 물질과 태양계 밖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외계 행성을 추적한다. 관찰 대상이 바뀌었다 뿐이지 여전히 비밀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정찰 위성의 전통을 이어받은 셈이다. 어쩌면 로먼 우주망원걍이 지구처럼 생명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찾을지도 모른다. 전쟁이 아니라 과학에서 승리하는 정찰 위성이 기다려진다.

참고 자료

NASA, https://science.nasa.gov/mission/roman-space-telesc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