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트리슐리에서 갑작스러운 홍수가 발생해 강변의 집들이 일부 물에 잠겨 있다./AFP 뉴스1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지역을 덮친 대홍수가 고산지대의 빙하와 암석이 무너진 뒤 하천을 막고, 쌓인 물이 다시 터져 나오면서 피해가 커진 '연쇄재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외 과학자들은 빙하 붕괴가 끝이 아니라 물과 진흙, 거대한 바위가 뒤섞여 하류로 쏟아지는 과정에서 재해의 규모가 급격히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26일 네팔 북부 라수와 지역과 티베트 일대에서 발생한 돌발홍수로 27일까지 최소 160여 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실종됐다. 한국인 9명도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현재 과학자들이 유력하게 보는 홍수의 원인은 네팔 랑탕리룽산 일대에서 발생한 대규모 암빙사태다. 암빙사태는 빙하의 얼음과 산의 암석이 함께 무너져 계곡 아래로 쏟아지는 현상이다.

대니얼 슈거(Daniel Shugar) 캐나다 캘거리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사고 전후 위성사진을 보면 폭 약 600m의 빙하 일부가 떨어져 약 1200m 아래 계곡으로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틴 쿡(Kristen Cook) 프랑스 그르노블알프대 연구원은 "지진계 신호로 볼 때 얼음과 암석 등 수억t의 물질이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대량의 얼음과 암석이 좁은 계곡으로 떨어지면서 연쇄재해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얼음과 바위가 강을 막아 일종의 '임시 댐'을 만들었고, 댐이 무너지면서 갇혀 있던 물과 흙, 돌이 한꺼번에 하류로 쏟아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ICIMOD)에 따르면 트리술리강 갈치 지역의 수위는 약 30분 만에 최대 9m 상승했다. 하류인 말레쿠에서도 비슷한 시간 동안 수위가 약 7m 높아졌다. 급류가 강해 트리술리강의 일부 수문 관측소 자체가 파손되거나 떠내려가기도 했다.

리즈 스티븐스(Liz Stephens) 영국 레딩대 교수는 "대부분 돌발 홍수는 폭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네팔과 티베트 같은 고산지역에서는 산사태와 눈사태, 빙하 관련 재해가 연달아 발생해 홍수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물에 진흙과 자갈, 바위가 대량으로 섞인 토석류가 강바닥과 강둑을 깎으면서 더 많은 물질을 끌어들인다. 파티마 필로수(Fatima M. Pillosu) 레딩대 연구원은 "토석류는 물보다 무거운 '액체 콘크리트'와 같다"며 "함께 움직이는 큰 바위가 건물과 교량까지 파괴할 수 있고, 흐름이 멈춘 뒤에도 진흙과 암석이 두껍게 굳어 구조 작업을 어렵게 한다"고 했다.

과학자들은 처음 빙하와 암석이 무너진 원인도 조사하고 있다.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는 것이 히말라야에서 진행 중인 빙하 후퇴와 영구동토층 해빙이다. 빙하는 계곡을 채우면서 주변 산비탈과 암벽을 물리적으로 받쳐주는 역할도 하는데, 빙하가 얇아지고 뒤로 물러나면 얼음이 받쳐주던 암벽이 노출되면서 산사면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

영구동토층은 최소 2년 이상 얼어 있는 땅이나 암반을 말한다. 고산지대에서는 암석 틈에 언 얼음이 바위들을 붙잡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따라서 기온이 올라 얼음이 녹으면 암석 사이 결합력이 약해져 낙석이나 산사태가 발생하기 쉬울 수 있다.

안진호 서울대 미래혁신연구원 빙권과학교육연구센터장 겸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온실가스 증가에 따른 지구온난화로 빙하와 적설의 용융이 빨라지는 현상이 이번과 같은 고산지역 재해의 주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연쇄 재해의 발생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조기 경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제프 다 코스타(Jeff Da Costa) 레딩대 연구원은 "상류에서 정확히 어떤 재해가 발생했는지 확인하지 못하더라도 강의 수위나 유량이 갑자기 변하는 것만으로 하류에 경보를 보낼 수 있다"며 "네팔처럼 상류가 국경 밖에 있는 곳에서는 국가 간 관측 정보 공유가 경보 시간을 확보하는 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상류의 수위와 지반 움직임, 진동 등을 실시간으로 관측하고 위성과 드론 자료를 함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정교한 감시·예측 체계를 갖춰도 그 신호를 즉각적인 행동으로 전환하는 비상 연락 체계가 없다면 실효성을 갖지 못한다"며 "경보가 실제 대피로 이어지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