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가 세계 최초로 리보핵산 간섭(RNA interference, RNAi) 원리를 이용한 살균제의 판매를 승인했다. 미국 그린라이트 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오이피락스(Oifirax)다. 멕시코 정부는 보건, 농업, 환경 당국이 참여한 9개월간의 규제 심사를 거쳐 이 제품의 상업적 판매를 승인했다고 지난 12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RNA 간섭은 RNA 가닥으로 유전자 발현을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디옥시리보핵산(DNA)의 유전정보는 필요한 부분만 메신저리보핵산(mRNA)으로 옮겨져 다양한 생명 현상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RNA 중 일부 조각은 단백질을 만드는 대신 다른 mRNA와 결합한다. 그러면 해당 mRNA가 복사한 유전자의 기능도 차단된다.
오이피락스는 RNA 분자로 포도 흰가루병을 일으키는 병원성 곰팡이(학명 Erysiphe necator)를 죽인다. 흰가루병 곰팡이에 감염되면 균사체와 포자가 밀가루처럼 잎 앞뒤를 다 덮어 광합성을 방해한다. 포도 알에 감염되면 껍질의 탄력이 사라져 갈라지고 결국 마르거나 썩는다.
오이피락스가 공략하는 유전자는 세포막 성분인 에르고스테롤을 만드는 CYP51이다. 흰가루병에 감염된 포도나무에 살포하면, 이중 가닥 RNA(dsRNA)가 곰팡이 안으로 들어간다. RNA는 다시 짧은 간섭 RNA(siRNA)로 잘라져 CYP51 유전자의 정보를 복사한 mRNA를 찾아 분해한다. 곰팡이는 에르고스테롤을 만들지 못해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죽는다.
문제는 CYP51 유전자가 다른 곰팡이에도 있다는 점이다. 원리상 오이피락스가 다른 곰팡이도 죽일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데미안 포메이(Damien Formey) 멕시코 자치대 교수는 "오이피락스가 식물 생장과 건강에 도움을 주고 동식물이나 배설물을 분해해 영양분을 제공하는 유익한 곰팡이 종(種)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린라이트는 흰가루병 곰팡이의 mRNA만 골라 분해하는 RNA 가닥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DNA나 RNA의 유전 정보는 4가지 염기가 어떤 순서로 배열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포메이 교수는 "오이피락스의 RNA 분자가 결합하는 mRNA에는 흰가루병 곰팡이 고유의 염기 서열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안드레이 자루르(Andrey Zarur) 그린라이트 대표(CEO)는 이날 멕시코 정부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오이피락스가 나비나 꿀벌, 지렁이 등 작물에 필수적인 다른 생물에는 해를 주지 않고 흰가루병 곰팡이만 제거한다고 밝혔다. 그는 오이피락스가 다른 토양 미생물이나 척추동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물정보학 분석 결과를 제출했으며, 멕시코 규제 당국이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계속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RNA 간섭은 의학에서 먼저 활용됐다.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짧은 RNA가 유전자 기능을 조절하는 RNA 간섭 현상을 밝힌 두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RNA 간섭을 이용한 치료제는 2018년 미 식품의약국(FDA)이 희소 질환 치료 신약을 처음으로 허가한 이래 지금까지 6종이 치료제로 승인을 받았다.
RNA 간섭 농약 개발도 활발하다. 독일 바이엘이 인수한 종자 회사 몬산토는 2011년에 이스라엘 신생 기업인 비로직스를 인수했다. 비로직스는 RNA 간섭 현상을 이용해 꿀벌의 기생충 감염을 막는 기술을 개발했다. 비로직스의 RNA 간섭 기술은 2021년 그린라이트로 이전됐다.
그린라이트는 2023년 RNA 간섭을 이용해 콜로라도감자잎벌레를 방제하는 농약인 '칼란타(Calantha)'를 출시했다. 콜로라도감자잎벌레는 감자와 가지 같은 가지과(科) 작물의 잎과 줄기를 갉아먹어 큰 피해를 주는 해충이다. 칼란타는 RNA 분자를 이용해 감자잎벌레의 생존에 필수적인 유전자를 차단한다. 애벌레가 농약이 살포된 잎을 먹으면 RNA가 장으로 들어가며, 그곳에서 mRNA를 분해한다.
국내에서는 제놀루션이 꿀벌 집단 폐사의 주요 원인인 낭충봉아부패병 바이러스를 막는 RNA 간섭 치료제인 '허니가드-R액'을 개발해 2024년 6월 농림축산식품부의 승인을 받았다. 낭충봉아부패병은 이른바 '꿀벌 에이즈'로 불리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유충에 감염된다. 2010년 국내에서도 이 바이러스가 유행해 토종벌의 90%가 사라졌다. 허니가드-R액은 지난 4월 정부 혁신제품으로 지정돼 공공조달 시장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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