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살아있는 공룡임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다. 뱃속에서 소화를 돕는 돌인 위석(胃石)이다. 이빨을 잃고 부리를 가진 공룡들은 오늘날 닭이나 타조처럼 뱃속에 둥글게 마모된 위석을 가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소화계의 변화가 육식 공룡을 새로 진화시켰다는 말이다.
다카사키 류지(Ryuji Takasaki) 일본 오카야마 이과대 공룡학과 교수 연구진은 최근 국제 학술지 '고생물학'에 위석의 마모 형태를 통해 공룡이 오늘날 동물처럼 다양한 소화 전략을 사용했음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공룡 일부는 닭이나 오리처럼 위에서 먹이를 갈아 빻았고, 일부는 악어나 사자처럼 입에서 뜯고 씹었다. 또 일부는 소나 양처럼 미생물이 위에서 먹이를 발효한 것으로 추정됐다.
◇닭처럼 모래주머니 돌로 소화한 공룡
연구진은 오늘날 조류 42종, 악어류 4종의 위석을 비교했다. 예상대로 주로 질긴 식물을 먹는 오리나 거위는 위 근육이 발달했고 해변의 자갈처럼 둥글게 닳은 위석을 갖고 있었다. 반면 동물을 잡아먹는 바다새나 악어는 위에서 먹이를 분쇄할 필요성이 적어 위 근육이 약했다. 그만큼 위석도 많이 부딪히지 않아 각진 모양이었다.
공룡 16종도 소화계의 진화 형태에 따라 위석이 달라졌다. 다카사키 교수는 "음식을 씹어 갈아내는 작업이 턱에서 위장으로 옮겨짐에 따라, 이빨이 사라지고 위석이 둥글게 바뀌는 상관관계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공룡은 크게 도마뱀과 비슷한 골반을 가진 용반목(龍盤目)과 새와 비슷한 골반을 가진 조반목(鳥盤目)으로 나뉜다. 용반목은 다시 두 발로 걷는 티라노사우루스, 벨로키랍토르 같은 수각류(獸脚類) 육식 공룡, 긴 목을 가진 브론토사우루스, 디플로도쿠스 같은 용각류(龍脚類) 초식 공룡 무리로 나뉜다.
이름과 달리 오늘날 새는 조반목이 아니라 용반목 육식 공룡인 수각류에서 진화했다. 일부 계통이 나중에 식성이나 초식이나 잡식성으로 바뀌고 새와 같은 골반 구조를 가진 조반목 공룡과 닮은 형태로 진화했다. 이빨도 사라지고 부리가 나타났다.
대표적인 예가 데이노케이루스 미리피쿠스(Deinocheirus mirificus)다. 1965년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길이 2.4m의 팔뼈가 발굴되면서 티라노사우루스보다 두 배 이상 큰 육식 공룡으로 추정됐지만 2014년 국내 연구진이 기존 학설을 뒤집었다.
이융남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장과 이항재 연구원은 몽골에서 팔과 목, 몸통, 다리뼈가 온전히 남은 상태로 발굴된 화석을 근거로 데이노케이루스가 타조공룡류의 초식 공룡이라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화석의 갈비뼈와 등뼈 사이에서는 위석이 1400개나 발견됐다.
이빨이 사라진 수각류의 위석은 둥근 모양이었다. 이들은 오늘날 닭처럼 위에서 식물성 물질을 기계적으로 분쇄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거대한 수각류 육식 공룡인 타르보사우루스는 강력한 이빨과 각진 위석을 갖고 있었다. 이빨로 살점을 뜯고 위가 마무리 작업만 했다는 의미다.
◇같은 초식성 공룡이라도 위석 역할 달라
같은 초식성 공룡이라도 위석이 둥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근육질의 위 대신 잘 발달된 치아와 턱, 또는 길게 늘어난 소화관에서 장기간 발효에 소화를 의존한 경우다. 예를 들어 머리에 뿔이 세 개 달린 트리케라톱스 같은 조반목 초식공룡은 각진 위석을 갖고 있었다. 강한 턱으로 먹이를 갈았고, 위는 단지 마무리 작업만 했다는 의미다.
긴 목을 가진 용각류 초식 공룡은 못이나 연필처럼 생긴 이빨로 나뭇잎을 훑어 씹지 않고 통째로 삼켰지만, 위석은 역시 각진 형태였다. 연구진은 용각류 공룡은 오늘날 소나 양, 사슴처럼 기다란 소화관에서 미생물 발효가 음식을 분해했다고 추정했다.
연구진은 공룡에서 이빨이 사라지고 위석이 둥글게 바뀐 변화가 조류의 진화에 기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력한 이빨과 턱을 가진 육식 공룡은 아무래도 몸 앞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반면 이빨이 사라진 수각류 공룡은 소화를 대부분 위에 맡기면서 무게 중심이 몸 가운데로 이동했다. 덕분에 오늘날 새처럼 땅에서 일어서는 것이 더 쉬워졌다는 설명이다. 공룡에서 새가 진화한 비결은 위에도 있었던 셈이다.
참고 자료
Paleobiology(2026), DOI: https://doi.org/10.1017/pab.2026.10112
Nature(2014), DOI: https://doi.org/10.1038/nature13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