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사 모더나 로고 앞에 주사기와 바늘이 놓여 있는 모습을 연출한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환자마다 제각각인 암세포를 찾아내 공격하는 개인 맞춤형 암 백신이 대규모 임상에서 처음으로 효과를 입증했다. 코로나 백신에 쓰인 mRNA(메신저 리보핵산) 기술이 활용됐는데, 암 치료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제약사 모더나와 MSD는 19일(현지 시각) 고위험 흑색종(피부암의 일종) 환자 1137명을 대상으로 맞춤형 mRNA 암 백신 '인티스메란'과 면역 항암제(몸속 면역세포를 깨워 암을 죽이게 하는 치료 방식)인 '키트루다'를 함께 투여한 임상 3상에서 주요 목표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수술로 암을 제거한 환자들에게 두 치료제를 함께 투여했더니, 키트루다만 투여한 환자보다 암이 재발하기까지 기간이 유의미하게 연장됐다는 것이다. 또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될 위험을 낮추는 목표도 달성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구체적인 숫자는 이번에 공개되지 않았다. 환자가 실제로 얼마나 더 오래 사는지 등은 아직 추적 중이다.

이번 임상 결과는 모더나가 2017년 초기 임상을 시작한 지 9년 만에 맺은 결실이다. 1000명 넘는 환자를 대상으로 사람마다 다른 암세포 돌연변이 특징을 일일이 파악해 한 명 한 명 맞춤형 백신을 만들어 진행한 3상에서 효과를 입증한 것은 큰 성과로 꼽힌다. 연구진은 "환자 개개인의 종양 특성에 맞춘 정밀 면역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mRNA 기술이 다양한 항암 치료제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흑색종 外 폐암·신장암 등도 임상 진행 중

모더나의 mRNA 암 백신 원리는 먼저 환자에게서 종양을 떼어내 유전 정보를 읽고, 정상 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만 있는 고유한 돌연변이, 일종의 '암 지문(指紋)'을 찾아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확보한 암 지문 정보를 mRNA에 담아 맞춤형 백신을 만든다. mRNA는 몸속 세포에 어떤 단백질을 만들지 알려주는 설계도이자 작업 지시서다. 이 백신은 발병 전에 미리 맞는 예방 백신과 달리, 암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투여해 재발을 막는 치료용 백신이다. 백신이 투입되면 몸속 세포는 mRNA에 적힌 설계도대로 암세포에만 있던 것과 똑같은 단백질 조각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암을 공격하는 면역세포에 범인(암세포)의 모습을 알려주는 몽타주 역할을 한다. 몽타주를 학습하고 기억한 면역세포는 몸속을 돌아다니며 진짜 암세포만 색출해 공격하게 된다.

이런 치료 방식이 가능해진 것은 mRNA 기술 덕분이다. 기존 약이나 백신은 완성된 약물을 공장에서 만들어 몸에 주사하기 때문에 개발 속도가 느리고 맞춤 제작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mRNA는 몸속에 들어가 세포에 '이런 단백질을 만들라'는 설계도다. 설계도 내용만 바꾸면 환자마다 제각각인 암세포 돌연변이에 대응하는 백신을 빠르게 만들 수 있다. 모더나에 따르면, 종양 분석부터 백신 제작까지 6주 정도가 걸린다. 코로나 사태 당시 새로운 변이가 나와도 유전 정보만 확보하면 몇 주 만에 백신 후보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원리다.

모더나의 백신이 최종 승인되더라도 과제는 적지 않다. 환자마다 백신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만큼, 제작 기간을 줄이고 수많은 환자의 종양 정보를 동시에 분석·생산할 체계를 갖추는 것도 관건이다. 환자 한 명을 위해 매번 맞춤형 공장을 돌리는 구조여서 비용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도 과제로 꼽힌다.

흑색종을 넘어 다른 암에도 효과가 있을지도 주목된다. 흑색종·폐암·방광암·신장암 등 4개 암을 대상으로 2·3상 임상 9건, 췌장암·위암도 초기 임상이 진행 중이다. 흑색종은 자외선 노출로 돌연변이가 많이 쌓이는 암이어서 표적을 찾기 쉬운 편에 속한다. 돌연변이가 적은 암에서도 같은 효과가 나올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모더나는 2027년 시판 승인을 목표로 규제 당국과 신청 절차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긍정적인 임상 결과 소식에 이날 모더나 주가는 177% 폭등했다. 최근 25년간 S&P500 편입 종목이 기록한 하루 최대 상승 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