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세를 넘긴 초장수인의 혈액에는 암세포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킬러 세포'가 일반 노인보다 4배 이상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나이가 들수록 면역 기능이 무조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 기능은 오히려 강화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 오사카대 고스케 하시모토 연구팀은 70세부터 110세 이상까지 고령자 28명의 혈액 속 면역세포를 분석한 결과를 최근 국제 학술지 '셀 리포츠'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CD4 세포독성 T세포(이하 킬러 세포)'다. 다른 세포를 직접 공격해 죽이는 T세포의 일종으로, 보통 전체 T세포의 5% 미만을 차지한다. 바이러스 감염 때 주로 발견되지만 최근에는 폐암이나 흑색종 같은 암세포도 공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연구진은 70~90세 8명, 100~109세 10명, 110세 이상 10명의 혈액을 비교했다. 그 결과 킬러 세포가 전체 T세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0~90세에서 약 4%였지만, 100~109세는 약 10%, 110세 이상은 약 18%였다. 100세를 넘어서면서 이 세포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단순히 숫자만 많아진 것도 아니었다. 100세 이상 참가자들에게서는 특정 표적을 알아보는 같은 계통 킬러 세포가 대량 복제돼 있었다. 한 참가자는 킬러 세포의 53.8%가 사실상 같은 계통이었다. 몸속에 특정한 공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같은 '전투원'을 집중적으로 늘린 것과 비슷하다.
연구진은 이 세포들이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킬러 세포 표면의 수용체를 분석했다. 세포 수용체는 각기 다른 표적을 알아보는 일종의 '식별 장치'로, 어떤 수용체를 갖고 있는지를 보면 이 세포가 무엇에 반응했는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그 결과, 약 30개가 암 환자의 T세포에서 보고된 것과 일치했고, 특히 폐암 환자에서 발견된 서열과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연구 참가자 가운데 암을 앓았던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때문에 초장수인의 킬러 세포가 암세포가 겉으로 드러나기 전에 감시하고 미리 제거하는 '면역 보호막' 역할을 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혈액 속 세포 분석만으로는 실제 이 세포들이 몸속 어디로 이동해 무엇을 공격했는지 확인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노화 면역 연구는 그동안 면역 기능이 어떻게 쇠퇴하는지에 주로 초점을 맞춰왔다"며 "이번 연구는 10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면역체계 일부는 오히려 강화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