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서 신호를 방해해 없애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던 '잡음'을 오히려 정보 처리에 활용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인간 두뇌를 모사한 하나의 인공 뉴런으로 서로 다른 신호를 처리할 수 있게 해 향후 뇌처럼 저전력·고효율로 작동하는 반도체 개발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KAIST 김경민 신소재공학과 교수팀은 반도체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전기적 잡음을 조절해 다양한 주파수의 신호에 반응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확률 뉴런(PPN)'을 개발했다고 16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즈'에 지난 5일 게재됐다.
라디오의 '지지직' 소리처럼 원래 신호에 불규칙하게 섞여 정보 처리를 방해하는 잡음은 전자기기에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반면 사람의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인 뉴런은 이런 불규칙한 잡음이 다양한 자극과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연구진은 이런 뇌의 특성에 착안해 반도체 잡음을 없애는 대신 인공 뉴런 반응으로 만드는 데 활용했다. 이를 위해 전기 자극에 따라 저항이 달라지고, 전원을 꺼도 이전 상태를 기억하는 반도체 소자 '멤리스터'를 이용했다. 멤리스터는 저항 상태를 바꾸면 여기서 발생하는 전류 잡음의 크기와 특성도 함께 달라지는 특징이 있다.
연구진은 이렇게 조절한 잡음을 이용해 뇌의 뉴런이 정보를 전달할 때 발생하는 것과 비슷한 불규칙한 전기 신호 '스파이크'를 만들어냈다. 같은 입력 신호가 들어와도 멤리스터의 상태에 따라 스파이크가 발생할 확률이 달라지는 인공 뉴런을 구현한 것이다.
이를 활용하면 하나의 인공 뉴런을 움직임처럼 천천히 변하는 신호를 전기 신호로 바꾸도록 썼다가, 설정을 바꿔 음성처럼 빠른 신호용으로 바꿔 쓸 수 있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 원하는 방송을 골라 듣는 원리와 비슷하다.
연구진은 실제로 신체 움직임과 음성 신호를 각각 처리한 결과 동작 인식 정확도 94.8%, 음성 인식 정확도 95%를 기록했다. 하나의 소자로 서로 다른 신호를 처리할 수 있어 향후 저전력 두뇌 모사 반도체에 활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경민 교수는 "멤리스터에서 발생하는 잡음을 단순한 오차나 불안정성으로 보지 않고 정보 처리 자원으로 활용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단일 하드웨어로 다양한 속도와 주파수의 신호에 맞춰 바꿔 사용할 수 있어 향후 저전력 두뇌 모사 시스템의 신호 처리 기술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