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의 리보핵산(RNA) 조절 시스템을 이용해 자신의 RNA를 오래 유지하는 방식이 대규모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메신저RNA(mRNA)의 수명과 단백질 생산량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RNA 조절 요소도 발견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 연구단장 연구진이 척추동물 감염 바이러스 337종을 분석해 RNA 안정성을 높이는 조절 요소와 작동 원리를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셀(Cell)'에 14일 게재됐다.
mRNA 끝부분에는 아데닌(A)이 연속된 'poly(A) 꼬리'가 붙어 있는데, 이 꼬리가 짧아지면 mRNA가 쉽게 분해된다.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의 효소를 이용해 이 꼬리를 보호하거나 다시 늘리는 방식으로 RNA의 수명을 연장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297속, 337종의 바이러스 유전체를 약 20만개의 RNA 조각으로 나눠 분석했다. 그 결과 RNA 말단에 혼합 꼬리를 만들어 분해를 억제하는 'TENT4' 효소를 활용하는 조절 요소 23개를 확인했다. 이 요소들은 19개 바이러스 속에서 발견됐으며, 서열과 구조에 따라 최소 6개 유형으로 분류됐다.
TENT4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조절 요소도 새로 발견됐다. 연구진이 뱀장어 피코르나바이러스에서 찾아낸 'Pt1'은 poly(A) 꼬리를 만드는 효소인 PAP를 직접 끌어들여 짧아진 꼬리를 다시 연장했다. 연구진은 이처럼 숙주의 RNA 꼬리 조절 효소를 이용하는 바이러스의 RNA 요소를 '테일론(tailon)'이라고 이름 붙였다.
Pt1을 선형 mRNA에 적용한 실험에서는 poly(A) 꼬리 길이가 60개에서 최대 194개까지 늘었고, mRNA 반감기는 7.6시간에서 23.1시간으로 약 3배 증가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안정성은 분해에 강한 원형 RNA에 근접한 수준을 보였다.
이번 결과는 제조가 상대적으로 간단한 선형 mRNA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수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향후 mRNA 백신이나 RNA 기반 치료제의 지속시간과 단백질 생산 효율을 높이는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
김빛내리 단장은 "이번 연구는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의 RNA 조절 시스템을 이용하는 정교한 전략을 대규모로 밝혀낸 성과"라며 "발굴한 조절 요소들은 기존 mRNA 치료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약효 지속성을 대폭 높일 수 있는 강력한 분자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Cell(2026),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6.07.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