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인간 과학자를 대체한다는 서사(敍事)는 아직 과장이다. 하지만 텍스트를 그럴듯하게 생성하는 AI에서, 지식이 어떻게 쌓이고 어디로 가는지 찾아내는 AI로 넘어가는 방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AI 과학자 플랫폼 기업 플루토랩스의 창업자 유준선 대표는 최근 부쩍 기대감이 커진 과학기술 연구에서 AI의 역할에 대해 다소 냉정하게 진단했다. 창업 7년째를 맞은 플루토랩스는 얼마 전 북미 학술 전자정보 분야 대표 커뮤니티인 ER&L(Electronic Resources & Libraries)과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를 계기로 북미 학술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ER&L은 2005년 설립된 북미 학술 전자정보 분야의 대표적인 전문가 커뮤니티다.
플루토랩스의 AI 과학자 플랫폼 '싸이냅스 AI(Scinapse AI)'는 2억 건 이상의 논문과 인용 관계를 연결한 인용 그래프를 기반으로 연구 간 연결성과 발전 과정을 분석해 가설 후보와 연구 설계안을 제안한다. '한국의 구글 코사이언티스트'로 불릴 만하다.
싸이냅스 AI와 연동해 운영하는 학술 전문 검색엔진 싸이냅스는 전 세계에서 19만 명이 넘는 연구자가 사용 중이다. 사용자 95% 이상이 해외 연구자다. 7월 20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플루토랩스 사무실에서 유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플루토랩스는 뭘 하는 회사인가.
"과학기술 분야 연구자의 리서치 파트너 역할을 하는 논문 검색·분석 도구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연구자가 자기 분야의 문제를 확인하고 여러 분야에서 그 문제를 풀 단서를 종합해 가설을 세우는 걸 돕고 있다. 전 세계에서 19만 명의 회원이 사용 중인 학술 검색엔진 '싸이냅스'를 기반으로 논문 검색을 넘어 연구 가설 수립과 기획을 보조하는 플랫폼 싸이냅스 AI도 서비스 중이다. 싸이냅스 AI는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코사이언티스트'와 비슷한 모델이라고 보면 된다. 보수적인 대학 시장에서 출시 2개월 만에 유료 전환을 이뤄낼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싸이냅스 AI의 차별화 경쟁력은.
"기술 외적인 부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 연구라고 해도 분야마다 문화와 접근법이 매우 다르다. 그런데 어느 한 분야에서 업적을 이룬 연구자는 모든 분야가 본인이 속한 분야와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 문제 해결을 위해 익숙한 방식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구글 딥마인드 팀과 화상 미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2019년 창업 이후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를 폭넓게 만나왔는데, 그 과정에서 건져 올린 지식과 경험이 진입 장벽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본다."
기술 관련 경쟁력은.
"과학기술 논문은 같은 분야의 두 논문이 비슷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키워드와 포맷이 비슷해 일반적인 거대 언어 모델(LLM) 기반의 AI로는 주요 차이점을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연구자 입장에서는 예를 들어 같은 물질이라도 접근 방법과 목적에 따라 다른 연구가 된다. 새로운 연구라고 해도 상당 부분은 선행 연구를 깔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관련 논문 데이터를 통해 더 정확하고 도움이 되는 정보를 추출해 제공하는 것을 기술력의 핵심으로 볼 수 있겠다."
LLM 기반 AI 모델의 구동 방식이 과학기술 연구와 맞지 않는다는 뜻인가.
"LLM은 통계에 기반해 언어적으로 자연스러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과학기술 연구에서는 'A가 나오면 다음에 B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식의 단순한 '상관관계'가 아니라 '인과관계' 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LLM 기반 AI는 'A가 B와 같이 등장한다'는 건 알아도 'A가 B의 원인이다'라는 것을 구조적으로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더구나 과학적인 발견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범용 AI 모델이 인지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예컨대 한때 정설이던 게 뒤집혔다거나 새로운 해석이 최전선에서 부상하고 있다는 것도 감지하기 어렵다."
강력한 AI의 도움으로 '흙 속에 묻힌 진주' 같은 논문이 진가를 발휘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창업 이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다(웃음). 연구자끼리 종종 하는 말인데,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 논문이 많이 나온다는 건 그 분야 연구자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런 분야에서 주요 연구는 어느 정도 방향이 정해지게 마련이다. 다만 다른 분야에서 했던 방법을 조금 변형해서 우리 분야의 문제를 풀어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학제 간 연구'의 범위를 넓히고 가속도를 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AI 덕분에 언어 장벽이 상당 부분 무너졌으니 단기간에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늘 그런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물론 글로벌 B2B(기업 간 거래) 영역은 언어를 떠나 인지도와 친숙도 등 극복해야 할 다른 장벽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해외 명문대 등으로 조금씩 고객층을 넓혀가다 보면 언젠가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
과학기술 연구의 여러 분야 중 'AI 동료 과학자' 활용이 특히 유망한 분야는 어딜까.
"컴퓨터과학, 물리·화학 등이 앞서 나갈 것이다. 컴퓨터로 반복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상 환경에서 뭔가를 하려면 인간의 개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바이오·의학의 경우 동물실험 등을 수행하는 '웻랩(wet lab)' 검증의 시간 비용 부담이 크지만, 성과에 따른 임팩트도 매우 크다. 구글 코사이언티스트와 앤트로픽 등이 이 분야에 집중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다른 분야는 어떤가.
"실제 사용 데이터를 보면, 전통적으로 실험과 현장 데이터가 중심이던 재료공학이나 화학공학 같은 분야의 사용이 생각보다 많다. 지금 우리가 돕는 건 아직 실험 전 과정이 아니라 문헌을 탐색하고 가설을 세우는단계 정도인데, 그 수준에 사용이 많다는 건 의미가 있다고 본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다. 컴퓨터과학은 이미 연구자가 각종 계산·분석 도구를 능숙하게 쓰고 있어서 AI가 새로 더해 줄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재료공학과 화학공학의 경우 실험은 활발하지만, 소프트웨어 도구의 도움은 상대적으로 덜 받아온 분야이기 때문이다. AI가 채워줄 여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AI 역할이 커지면 인간 연구자 수가 줄고, 미래 과학기술 경쟁력에 부정적이지 않을까.
"인간 연구자 수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 연구자에게는 해보고 싶은 게 늘 쌓여 있는데 문제가 되는 건 '시간 부족'이었다. 머릿속엔 아이디어가 계속 떠오르는데, 관련 문헌을 일일이 뒤지고, 다른 분야에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확인하면서, 실험을 세팅하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AI가 문헌 조사와 실험을 알아서 진행해 줄 수 있다면, 연구자가 지금까지 시간이 없어서 접어뒀던 시나리오를 테스트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결과 개별 연구자의 생산성이 크게 오를 것이고, 연구 과정에서 문헌을 뒤지고 반복 작업을 하는 부담을 덜어내고 늘어난 시간을 가설을 세우고 새로운 걸 발견하는 일에 더 투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연구와 실험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 연구자라는 직업은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AI가 인간 과학자를 대체한다는 서사는 아직 과장이다. 지금 화제가 되는 성과도 뜯어보면 대부분 '할 수 있다'를 보여준 단계지 '해냈다'는 아니다. 하지만 텍스트를 그럴듯하게 생성하는 AI에서, 지식이 어떻게 쌓이고 어디로 가는지를 찾아내는 AI로 넘어가는 방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앞으로 이 분야의 승부는 더 똑똑한 모델보다, 과학 지식이 연결되는 구조를 누가 제대로 다루느냐 그리고 누가 연구자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도움을 더 많이 줄 수 있느냐에서 갈릴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