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에만 생긴 DNA 돌연변이를 찾아 제거하는 항암 기술을 국내 연구진이 개발 중이다. 특정 유전자 변이가 있는 암에 주로 쓰이는 기존 표적 항암제와 달리, 다양한 암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항암제로 가능성이 주목된다.
명경재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장은 10일 유전자 가위로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항암 기술 '신델라(CINDELA)'의 연구 현황을 공개했다. 신델라는 암세포가 돌연변이를 통해 새롭게 만든 DNA 염기 서열을 유전자 가위(크리스퍼-캐스9)로 잘라 암세포를 죽이는 방식이다. 표적 돌연변이 서열이 없는 정상 세포에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설계했다.
명 단장은 이 방식으로 대장암·유방암·혈액암 등 10종이 넘는 암에서 암세포 사멸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암을 이식한 생쥐에서도 종양 성장을 억제했다. 최근 생쥐의 간에 암을 만든 뒤 신델라를 투여해 종양이 줄어드는 결과를 얻었다.
기존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는 빠르게 분열하는 암세포를 죽이는 과정에서 머리카락, 장, 혈액을 만드는 정상 세포까지 공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탈모·설사·면역 저하 같은 부작용이 생긴다. 표적 항암제는 이런 부작용은 줄였지만, 특정 유전자 변이가 있는 암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신델라의 특징은 암을 일으킨 특정 돌연변이만 찾는 대신, 암세포와 정상 세포를 구분할 수 있는 돌연변이 자체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암세포에는 정상 세포와 다른 돌연변이가 수천~수만 개씩 존재하기 때문에 이 가운데 공격할 표적을 골라낼 수 있다는 것이다. 명 단장은 "이론적으로는 모든 암에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궁극적으로 환자 개개인의 암에 맞는 '맞춤형 유전자 가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환자의 암 조직과 정상 세포 DNA를 비교해 암세포에만 있는 돌연변이를 찾고, 이를 자르는 유전자 가위를 설계하는 방식이다. 명 단장은 이 과정을 자동화할 경우 유전체 분석부터 맞춤형 치료제 제작까지 약 한 달이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실제 환자에게 투여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다. 특히 유전자 가위를 몸속 암세포까지 얼마나 정확하고 충분한 양으로 전달하느냐가 관건이다. 연구진은 코로나19 mRNA 백신에도 활용된 지질나노입자(LNP)에 유전자 가위에 필요한 단백질과 RNA를 실어 보내는 방식을 시험하고 있다. 기존 바이러스 전달 방식보다 안전성을 높일 가능성이 있지만, 암세포까지 도달하는 효율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
환자마다 치료제 일부가 달라지는 것도 숙제다. 유전자 가위의 기본 구조는 같지만 어떤 DNA를 자를지 안내하는 RNA는 환자의 돌연변이에 맞춰 바꿔야 한다. 연구진은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 여러 암 환자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돌연변이를 찾아 미리 치료제를 만들어 놓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신델라 기술은 스타트업에 이전돼 후속 개발이 진행 중이고, 전임상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명 단장은 "실제 치료제가 되려면 전달 효율과 안전성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앞으로 5~10년 정도 지나면 임상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