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챗GPT와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바이러스 유전자를 생성했다. 이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에 감염되는 박테리오파지이다. 오랫동안 병원균을 막는 데 써온 바이러스여서 인간을 위협하는 항생제 내성균을 막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악용되면 치명적인 생물학 무기가 될 수 있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브라이언 히(Brian Hie) 교수 연구진은 "대화형 AI의 기반이 되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에 상응하는 '게놈 언어 모델'을 활용해 박테리오파지의 유전체(게놈)를 설계했다"고 6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기존 바이러스에 내성을 가진 대장균도 AI가 만든 박테리오파지 DNA에 감염됐다. 박테리오파지는 1917년 프랑스 미생물학자 펠릭스 데렐이 처음 발견했다. 이름은 그리스어로 '박테리아를 먹는다'는 뜻이다. 줄여서 파지라고 한다.
◇AI 챗봇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오픈AI의 챗GPT와 같은 방식으로 DNA 염기 서열을 분석하고 생성하는 이보(Evo)라는 이름의 AI 모델을 개발했다. 챗GPT는 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단어들을 연결해 사람의 질문에 답한다. 사전에 인터넷과 책 등에서 수집한 방대한 양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수년간 훈련을 거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보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전에 박테리오파지의 게놈 데이터를 학습했다. 게놈은 모든 생명 현상을 좌우하는 유전자 전체를 의미한다. DNA는 아데닌(A)·구아닌(G)·시토신(C)·티민(T)이라는 네 종류의 염기로 구성된다. 생명체는 이 염기들의 순서대로 모든 생명 활동을 좌우하는 단백질을 합성한다. 게놈 데이터는 이 염기 서열을 말한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이보1과 이보2라는 생성형 AI에 그동안 연구가 많이 된 박테리오파지 Φ(파이)X-174의 유전자 11개와 가까운 친척 바이러스 약 1만5000종의 유전 정보를 학습시켰다. AI는 이후 새로운 파지의 게놈 설계도 수천 개를 생성했다. 연구진은 그중 285개를 선정해 실험실에서 실제로 염기들을 이어 붙여 파지 게놈을 제작했다.
인간은 게놈을 이루는 염기가 30억개나 되지만 바이러스는 수천 개에 불과해 합성이 쉽다. 다만 지금까지 바이러스 게놈 합성은 기존에 알려진 정보를 토대로 했다면, 이번에는 AI가 새로 스스로 생성했다는 점이 다르다. 특히 처음에 대장균에서 생존 가능한 박테리오파지는 16개에 불과했으나, 이들의 게놈을 혼합하자 기존 박테리오파지에 내성을 가진 대장균 2가지도 감염됐다.
영국 맨체스터대의 패트릭 차이(Patrick Cai) 교수는 "이번 연구는 합성 유전체학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라며 "AI가 생명체의 염기 서열을 예측하는 것을 넘어, 실험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완전한 기능성 게놈을 생성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했다"고 평가했다.
◇내성균도 감염, 슈퍼박테리아 치료에 전기
연구진은 앞으로 AI가 세균 감염 치료제가 될 수 있는 박테리오파지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박테리오파지의 DNA는 박테리아의 복제 효소를 이용해 바이러스를 복제한다. 박테리아 안에 가득 찬 바이러스들은 세포막을 찢고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 과정에서 박테리아는 죽는다.
박테리오파지는 박테리아를 감염시키고 죽이는 능력 때문에 발견 직후부터 병원균 치료제로 각광을 받았다. 1920~1930년대 이질과 패혈증 등 다양한 세균성 질환을 치료하는 데 이용됐다. 하지만 1940년대 페니실린 항생제가 널리 쓰이면서 점점 잊혔다. 박테리오파지 치료제가 부활한 것은 항생제의 오·남용 때문이다.
사람뿐 아니라 가축에도 항생제가 무차별적으로 쓰이면서 배설물 등을 통해 자연으로 항생제가 퍼졌다. 그러자 박테리아는 항생제를 이겨내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 같은 항생제 내성균들은 전 세계로 퍼졌다. 어떤 약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이다. AI는 이런 슈퍼박테리아도 잡는 파지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같은 방식으로 치명적인 무기가 될 바이러스를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존스 홉킨스대 보건안보센터의 토머스 잉글스비(Thomas Inglesby) 교수와 모리츠 한케(Moritz Hanke) 박사는 이날 사이언스에 같이 실린 논평 논문에서 생성형 AI에 전염성이 더 강하거나 치사율이 더 높은 인플루엔자 게놈을 만들어 달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스탠퍼드대 연구진도 이런 우려를 감안해 AI가 학습하는 과정에서 동식물과 인간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나아가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AI의 게놈 설계 과정 전반에 걸쳐 전문가의 감독과 강력한 안전장치가 필요함을 보여준다"며 "향후 게놈 설계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진은 프로젝트 전 과정에 걸쳐 안전, 보안 전문가와 협의해야 한다"고 했다.
논평 논문 저자들은 "이번 저자들은 강력한 생물학적 AI 모델을 개발하는 대다수 연구자보다 훨씬 더 신중하게 생물 안전과 생물 보안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면서도 "생성형 AI를 이용해 바이러스 게놈을 구성하는 능력은 이미 존재하지만, 이를 안전하게 관리할 거버넌스(관리체제)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2026),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ec2657
bioRxiv(2025), DOI: https://doi.org/10.1101/2025.09.12.675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