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이어 가뭄이 남부지방을 덮치면서 농업·생활·산업 용수 부족과 녹조까지 피해가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기후변화로 비가 내리는 방식이 달라지며 나타난 복합재해로 진단했다. 긴 무강수와 짧고 강한 폭우가 반복되면 기존 물 관리 체계로는 가뭄과 침수에 동시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전국 강수량은 평년의 72.3% 수준에 그쳤다. 특히 경남에는 평년의 21.9%에 불과한 비가 내려 역대 7월 가운데 가장 가물었다. 지난달 중순 경상 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난 기상가뭄은 점차 전라 지역으로도 확대됐다.
국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이번 남부지방 가뭄은 단순한 일시적 강수 부족이라기보다, 기후변화 이후 비가 내리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무강수 기간이 길어지는 동시에 비가 내릴 때는 짧고 강한 집중호우가 나타나면서, 가뭄과 폭우가 반복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비가 한꺼번에 많이 내리더라도 가뭄이 곧바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짧은 시간에 쏟아진 비는 땅속으로 충분히 스며들거나 저수지에 저장되기 전에 하천과 바다로 빠져나가기 쉽다. 반면 비가 내리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토양 수분이 줄어 농업·생활용수 부족 위험은 다시 커진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비가 오는 날수는 줄어드는 반면 집중호우는 늘어나, 강수의 시간적 집중과 간헐성이 심화되고 있다"며 "강수량이 늘어남에도 가뭄 위험이 함께 커지는, 이른바 '더 젖어들면서 동시에 더 말라가는' 역설이 우리나라 여름철 기후 특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상황은 폭염과 가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피해를 키우는 '가뭄-폭염 복합재해'의 특징도 보인다. 토양이 마르면 물 증발에 쓰이는 에너지가 줄고 지표면과 공기를 데우는 열은 늘어난다. 높아진 기온은 다시 토양 수분을 더 빠르게 고갈시켜 가뭄을 악화시킨다.
예상욱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가뭄으로 달궈진 지면의 열이 폭염을 강화시키고, 강해진 폭염이 다시 지면 토양 수분을 고갈시키는 상호작용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뭄과 폭염이 동시에 또는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복합재해의 빈도가 2010년대 이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며 "복합재해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별도의 위험경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홍수·가뭄 따로 관리해선 한계… 달라진 강수에 물 관리 바꿔야"
전문가들은 가뭄과 홍수를 별개 재난으로 다뤄 온 기존 수자원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수에 대비해 물을 빠르게 바다로 흘려보내면 뒤이어 찾아오는 가뭄에 취약해질 수 있다. 반대로 가뭄에 대비해 물을 최대한 가둬두면 갑작스러운 집중호우 때 침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가뭄과 홍수는 별개의 재난이 아니다"라며 "홍수와 가뭄을 하나의 연속된 시스템으로 묶어 다루고, 강수량 변동의 속도와 폭 자체에 대응하는 새로운 수자원 패러다임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과거 평균 강수량을 기준으로 한 물 관리에서 벗어나 지역별 강수일수와 집중 호우 강도, 토양 수분 변화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국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기후 전망을 댐과 저수지 운영, 농업·산업용수 배분, 도시 배수·저류시설 확충 등 중장기 국가 재해 완화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며 "정책의 기준도 과거 기후의 평균값이 아니라 변화하는 강수 특성에 맞춰 재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구자호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기상·기후, 건축·토목, 보건·환경 전문가가 생활용수를 좀 더 많이 확보하는 도시를 구축할 방안에 대해 지금보다 더 깊이 논의해야 한다"며 "도시가 확보한 수자원의 양을 시민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정보로 가공해 제공하고, 미리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는 시스템과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