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서아시아에 살다가 4만여 년 전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을 복원한 모형./네안데르탈 박물관

헬스장에서 똑같은 운동을 해도 유난히 근육이 잘 붙는 사람이 있다. 운동과 식단, 여러 유전자가 이런 차이를 만들지만, 약 4만7000년 전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도 한몫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와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등 국제 공동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현생인류로 넘어온 '성장호르몬 수용체' 유전자 변이가 현대인의 근육량과 턱·치아 형태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5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성장호르몬 신호 강화한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네안데르탈인은 유럽과 서아시아에 살다가 4만여 년 전 사라진 고대 인류다. 화석에서는 넓은 흉곽과 굵고 튼튼한 뼈가 확인돼 다부지고 근육질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진은 사람의 성장에 관여하는 성장호르몬 수용체에 주목했다. 뇌하수체에서 분비된 성장호르몬이 근육과 뼈에 명령을 보내는 신호라면, 성장호르몬 수용체는 세포 표면에서 그 신호를 받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네안데르탈인의 수용체에는 현대인에게 흔한 형태와 다른 아미노산 변화 두 개가 있었다. 수용체의 422번째와 561번째 아미노산이 바뀐 변이다. 현대인에게서는 두 변이가 한 묶음으로 유전된다.

연구진은 성장호르몬 수용체가 없는 생쥐 유래 세포에 각각 네안데르탈인형과 현대인형 수용체를 넣었다. 그런 다음 두 세포에 같은 농도의 뇌하수체 성장호르몬을 공급해 반응 차이를 살폈다. 분석 결과, 성장호르몬과 결합하는 능력은 두 수용체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5일 뒤 네안데르탈인형 수용체를 넣은 쪽의 세포 수는 현대인형보다 39% 많았다. 네안데르탈인형 수용체가 세포 안으로 성장 신호를 더 강하게 전달해 세포가 더 빨리 증식한 것이다.

◇키 3㎜ 더 크고 팔다리 근육량은 150g 많아

연구진은 세포에서 나타난 차이가 실제 사람의 몸에도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영국·핀란드·일본·한국·대만의 바이오뱅크에 등록된 성인 113만4174명의 유전체와 신체 측정 자료를 살폈다.

분석 결과,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물려받은 성장호르몬 수용체 유전자 변이 조합을 부모 중 한쪽에게서 받은 사람은 이 변이가 없는 사람보다 평균 키가 3㎜ 크고 체중이 285g 더 나갔다. 팔다리 근육량 150g, 몸통 제지방량(除脂肪量) 121g이 체중 차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제지방량은 몸에서 지방을 뺀 나머지 조직의 무게로, 근육뿐 아니라 뼈와 장기, 체수분 등도 포함한다.

◇턱과 치아에도 남은 흔적

이 변이와 관련된 특징은 근육에만 그치지 않았다. 연구진이 기존 연구 4건을 종합한 결과, 변이를 하나 가진 사람은 귀밑에서 아래턱 모서리까지 이어지는 '하악지'가 평균 3.6㎜ 짧았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연구에서는 일부 앞니와 위쪽 송곳니의 뿌리가 더 짧은 것으로 보고됐다. 네안데르탈인은 현대인보다 치아 뿌리가 짧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 변이 하나만으로 사람의 얼굴 형태가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해지는 것은 아니다. 치근(齒根) 연구 역시 표본이 작아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체격에 끼친 영향 작아

이번 연구는 100만명 이상의 신체 자료에서 확인된 통계적 연관성을 세포 실험으로 뒷받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세포에서 나타난 결과가 사람의 몸에서 그대로 재현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 인체에서는 조직과 발달 시기, 다른 호르몬과 유전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변이가 키와 체중에 미치는 영향도 각각 3㎜와 285g으로 작았다. 개인의 체격은 운동과 영양, 수많은 다른 유전자와 환경 요인이 함께 결정한다. 네안데르탈인형 변이를 하나의 '근육 유전자'로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