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구이용으로 소비되는 한우는 암소와 거세한 숫소가 거의 반반이다. 일반 숫소는 고기가 질겨 가공용이나 국거리로 쓰인다. 야생 상태였다면 단연 암소가 1순위이지 않았을까. 빙하기 최고의 식량이었던 매머드도 암컷이 단연 선호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비드 디에즈 델 몰리노(David Díez del Molino) 스웨덴 스톡홀름대 동물학과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2만~3만년 전 유라시아와 북미에서 나온 털매머드 유골 500여 점을 조사한 결과 빙하기 인류는 암컷을 집중적으로 사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30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이번 논문에는 유럽과 북미 14국 52명이 공동 저자로 등재됐다.
◇수컷은 혼자 다니다 자연사 많아
연구진은 이번에 유라시아와 북미 지역에서 발굴된 털매머드 448마리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해독했다. 앞서 분석된 73마리의 DNA 정보도 종합해 총 521마리의 성별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화석에 남은 성염색체를 기준으로 암수를 구별했다. 매머드는 오늘날 코끼리나 인간과 마찬가지로 암컷은 XX, 수컷은 XY 성염색체를 가진다.
표본 중 100마리는 인간 유적지 근처에서 나왔고, 421마리는 자연 유적지에서 나왔다. 분석 결과 자연 유적지에서는 수컷 매머드가 280개체로 표본의 66.5%를 차지했다. 자연 유적지에서는 매머드 뼈·엄니·이빨이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흩어져 있었다. 연구진은 유골이 100m 이상 떨어져 있거나, 수만 년에 걸친 서로 다른 지층 구간에서 나왔다면 동일 개체나 인간이 만든 집적지일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디에즈 델 몰리노 교수는 "만약 매머드 수컷이 오늘날 코끼리 수컷처럼 혼자 다니고 위험을 감수했다면, 땅꺼짐(싱크홀)이나 산사태, 타르 웅덩이 같은 자연적인 함정에 더 쉽게 빠졌을 것"이라며 "수컷 들소와 불곰에서도 같은 경향이 관찰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자연적 함정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라브레아 타르 구덩이(La Brea Tar Pits)이다. 지하의 석유 성분이 지표면으로 스며 나와 고여 생긴 끈적한 천연 아스팔트 웅덩이다. 수만 년 동안 동물들이 물이나 풀로 착각해 빠지면서 완벽한 상태의 고대 화석이 대량으로 발굴되는 세계적인 화석 보존 지역이다.
◇암컷은 새끼와 같이 사냥감 돼
반면 인간 활동과 관련된 유적지에서 발견된 매머드는 암컷이 70%였다. 표본 100개체 중 70개체가 암컷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암컷을 집중적으로 노렸다는 의미다. 암컷은 수컷보다 몸집이 작고, 새끼를 데리고 다녀 이동 속도가 더 느리다는 점에서 난폭하고 덩치가 큰 수컷보다 더 쉬운 사냥감이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털매머드는 수십 마리에서 많게는 수백 마리까지 유해가 모여 있는 상태로 발굴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곳은 대부분 인류가 불을 피워 음식을 조리했던 유적지 근처에 있다. 매머드 유골에서도 석기로 긁은 자국처럼 사람이 도축한 흔적이 나온다. 일부 매머드는 뼈가 사고로 부러지고 창끝이 박힌 채로 발굴됐다. 당시 사냥꾼들이 구덩이나 절벽으로 매머드를 몰아넣고 창으로 찔러 사냥한 흔적이다.
데이비드 디에즈 델 몰리노 교수는 "대규모 매머드 뼈 집적지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사냥으로 생긴 것인지는 수십 년간 논쟁의 대상이었다"며 "이번에 자연 환경에서 발견된 매머드와 고고학적 맥락에서 발견된 매머드의 유전적 성비를 비교함으로써, 이제 뼈 집적지의 주된 원인이 인간의 활동이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연구진은 이번에 XX/X0 모자이크 현상을 보이는 매머드 한 마리도 발견했다.일부 세포에 성염색체가 하나만 존재하는 상태로, 인간에게 터너 증후군을 유발한다. 여성에게 X 성염색체가 부족하면 저신장, 난소 기능 부전, 사춘기 지연 등이 나타난다. 멸종된 동물에서 성염색체 돌연변이가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오늘날 가축에서는 확인됐지만 코끼리에서도 아직 발견된 적이 없다.
◇네안데르탈인부터 뼈 가공 공장 차려
논문 공동 교신 저자인 러브 달렌(Love Dalén) 스톡홀름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고고학적 의문들에 답하는 데 있어 고대 DNA 연구의 위력을 입증한다"며 "고대 DNA 연구의 표본 규모를 확대하면 동물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수만 년 전의 동물 행동과 인간 문화에 대한 통찰까지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매머드를 따라다니며 사냥했다. 4만년 전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유라시아에 오기 전부터 매머드 무리를 따라가며 사냥하고 결과물을 처리하는 캠프를 차렸다. 네덜란드 라이덴대 연구진은 지난해 네안데르탈인이 12만5000년 전에 지금의 독일 동부에서 동물들의 뼈를 대규모로 가공한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멸종한 매머드와 코끼리, 소를 포함해 대형 동물 172마리에서 나온 10만개 이상의 뼛조각을 발굴했다. 뼈들은 잘게 조각나 있었고, 주변에서 숯이나 그을린 화강암 등 불을 피운 흔적도 나왔다. 연구진은 뼈를 끓여 지방을 뽑아낸 증거라고 추정했다. 동물성 지방은 잘 부패하지 않아 오래 보관할 수 있고, 휴대하기도 편리하다. 매머드를 사냥하고 바로 고기만 먹어치우지 않고 일종의 식품 가공까지 했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진은 빙하기 인류도 같은 방식으로 매머드를 사냥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논문 제1 저자인 스웨덴 고고유전학 센터의 한나 무츠(Hannah Moots) 박사는 "코끼리 무리는 계절에 따른 이동 경로를 따라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이동하는 반면, 수컷은 더 무작위적으로 움직인다"며 "아마도 빙하기 사냥꾼들도 매머드 무리가 지나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으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Current Biology(2026), DOI: https://doi.org/10.1016/j.cub.2026.07.023
Science Advances(2025), DOI:https://doi.org/10.1126/sciadv.adv1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