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높은 한국의 자살률에 주목한 유럽 인구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0년간 노년층 자살률은 전반적으로 낮아졌지만, 저학력 미혼·이혼 남성은 높은 자살률이 좀처럼 꺾이지 않는 취약층으로 남아, 정부 대응이 필요하다는 경고가 나왔다.
독일 막스플랑크인구연구소,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스페인 폼페우파브라대 공동 연구진은 한국의 사망자 등록 자료와 인구총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최근 국제 학술지 'BMJ 공중보건'에 발표했다고 30일 밝혔다. 연구진은 한국의 노년층 자살률이 특히 높은 데다, 비혼 증가, 교육 확대, 가족 구조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2000년, 2010년, 2020년 당시 60대였던 1931~1940년생, 1941~1950년생, 1951~1960년생 집단의 자살률을 성별, 혼인 상태, 교육 수준에 따라 비교 분석했다.
분석 결과, 결혼한 사람이나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보다 평생 결혼하지 않은 미혼자와 이혼한 사람의 자살률이 높았다. 이런 차이는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두드러졌다. 특히 교육 수준이 낮은 미혼·이혼 남성은 전반적인 자살률 감소 흐름에서도 높은 수준에 머물렀다.
2020년 60~69세인 초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의 미혼 남성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약 270명으로, 중학교 이상 미혼 남성 약 80명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이혼 남성도 초등학교 졸업 이하 집단은 약 250명으로, 중학교 이상 집단 약 60명을 크게 웃돌았다.
반면 교육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미혼·이혼 노인의 자살률은 최근 세대로 올수록 눈에 띄게 낮아졌다. 연구진은 노년 자살률 감소가 모든 계층에 고르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사회경제적 자원을 갖춘 집단에 집중됐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연구진은 주요 원인으로 노후 안전망을 가족에 의존하는 한국 문화를 꼽았다. 교육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한 노년층은 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데다 배우자와 자녀의 부양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기에 성장해, 가족이 없을 때 더 큰 위험에 노출됐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은 자녀와 인척 등 결혼을 통해 형성한 사회관계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한국에서 질병, 장애, 노후 생활을 국가보다 가족이 책임져 왔지만, 비혼과 이혼은 늘고 자녀 수는 급격히 줄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족에 의존해 온 노후 안전망이 약해지면서 돌봄 사각지대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2025~2050년부터는 고학력 미혼 남성 자살 사망자 수가 저학력 집단보다 더 많아질 것이라는 추산도 내놨다. 대학 진학이 보편화됐고, 결혼하지 않은 남성이 늘어나면서 해당하는 인구 집단이 커진다는 것이다. 현재 가장 취약한 집단인 저학력 미혼·이혼 남성을 보호하는 동시에, 앞으로 늘어날 고학력 미혼 노인의 사회적 고립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진은 "노년기 미혼과 관련한 사회적 고립에 대응하려면 정부의 지속적이고 정밀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가족 형태가 달라지는 속도에 맞춰 노인 복지와 자살 예방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