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그룹 임직원이 지난 4월 13일 한미 C&C 스퀘어에서 열린 '에페 프로젝트' 발족을 기념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한미약품

한미약품이 독자 개발한 첫 비만 신약의 제품명을 '에페(EPPE)'로 확정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거쳐 연내 출시되면 덴마크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미국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가 사실상 양분해 온 국내 비만약 시장에 첫 국산 도전자가 가세하게 된다.

2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최근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정식 제품명을 에페로 정하고 브랜드 로고와 디자인 작업을 마무리했다. 펜싱 종목인 '에페'를 통해 제품명을 연상시키는 티저 영상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한미약품이 당초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자체 개발한 GLP-1 계열 신약 후보물질이다. 2015년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에 기술수출돼 임상 3상까지 진행됐지만, 사노피의 사업 전략 변경으로 2020년 권리가 반환됐다. 한미약품은 이후 이 물질의 체중 감량 효과에 주목해 비만 치료제로 개발 방향을 바꾸고 상용화에 다시 나섰다.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라는 성분명에 기술 수출 성공과 권리 반환, 재도전으로 이어진 신약 개발의 역사가 담겼다고 보고 이를 브랜드명에 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임주현 한미그룹 부회장은 앞서 "에페글레나타이드 개발 과정에는 한미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회사인지 보여주는 상징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늦어도 연내 제품을 출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혁신 신약을 우선 심사해 심사 기간을 단축하는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GIFT)' 대상으로 지정돼 오는 10월쯤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는 허가가 이뤄지는 대로 이르면 10월, 늦어도 연내 제품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한미약품이 내세우는 에페의 경쟁력은 한국인 체질에 맞는 특화 설계다. 한미약품은 국내 대학 병원에서 한국인 성인 비만 환자 448명을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진행했다. 40주 투여 결과 에페글레나타이드 투여군의 체중은 투여 전보다 평균 9.75% 줄었다. 환자 약 80%는 체중이 5% 이상 줄었고, 절반가량은 10% 이상 감소했다. 특히 체질량지수(BMI)가 30 미만인 여성 소그룹에서는 평균 12.2% 체중 감소율을 보였다.

에페에는 약효를 오래 유지시키기 위해 약물을 서서히 방출되도록 한 한미약품의 '랩스커버리' 기술이 적용됐다. 한미약품은 다른 비만약 임상 자료와 비교해 구토, 메스꺼움 등 위장관 이상 반응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가벼웠다고 설명한다.

국내 생산도 차별점으로 내세운다. 한미약품은 경기 평택 바이오플랜트에서 연간 300만 도즈의 비만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다. 해외 공급 상황에 영향을 받는 수입 제품보다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하고, 가격 경쟁력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국내 비만약 시장은 GLP-1 비만약 등장과 함께 급성장하고 있다. 의약품 시장조사 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은 5786억원으로 전년보다 137% 커졌다. 현재 비만약 시장은 마운자로와 위고비의 양강 구도다. 비알피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6월 비만약 시장 점유율은 마운자로가 86.7%, 위고비는 13.2%였다. 삭센다 등 나머지는 0.1%에 그쳤다.

2024년 10월 국내 출시된 위고비는 시장을 먼저 열었지만, 2025년 8월 등장한 마운자로는 출시 한 달 만에 위고비를 추월했다. 위고비가 식욕과 혈당을 조절하는 GLP-1에만 작용하는 데 비해, 마운자로는 음식 섭취 뒤 인슐린 분비를 돕는 GIP에도 함께 작용하는 이중 작용제다. 마운자로의 체중 감량 효과가 더 크다고 알려지면서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다만 앞으로 비만약 시장에선 단순한 체중 감량 효과 대신 가격, 안정적인 공급, 부작용 여부 등이 승부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비만·대사 질환 전문가는 "비만약 시장은 이제 얼마나 많이 빠지느냐뿐 아니라 환자가 얼마나 오래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며 "부작용과 공급 불안이 적고 가격 경쟁력을 갖춘다면 국산 비만약도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