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A(미국 식품의약국) 약국조제자문위원회가 BPC-157과 TB-500 등 미승인 펩타이드 6종을 약국 조제 가능 원료 목록에 포함하라고 권고했다. /AI 생성 이미지

'전신 회복력 강화, 뼈 부상 회복, 위장 질환 치료', '신체 모든 곳에서 강력한 치유 효과 발휘'.

국내 한 온라인 사이트는 특정 펩타이드 제품을 판매하며 이런 효능을 내세우고 있다. 펩타이드는 인체에서 호르몬이나 세포 간 신호 전달 등에 쓰이는 물질로 수많은 종류가 있다. 위고비 같은 비만 치료제나 인슐린처럼 정식 의약품으로 개발된 펩타이드도 있지만, 회복·항노화 효과를 내세운 기타 펩타이드 제품 상당수는 의약품으로 승인받지 않은 채 온라인과 비공식 경로로 유통되고 있다. 근육 운동 동호인들 사이에서 인기인 'BPC-157' 펩타이드를 암암리에 파는 곳도 있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FDA(미국 식품의약국) 약국조제자문위원회가 지난 24일(현지 시각) BPC-157과 TB-500 등 미승인 펩타이드 6종을 약국 조제 가능 원료 목록에 포함하라고 권고했다. FDA가 이를 받아들일 경우 미국 조제약국을 통한 펩타이드 제품 공급이 급증할 전망이다. 한국에서도 관련 제품의 유통이 확대되고, 의약품으로 승인받지 않았는데도 'FDA 승인 제품'으로 오인하게 하는 광고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바이오 해커가 띄운 '회복 주사'

이번에 자문위원회가 약국 조제 허용을 FDA에 권고한 펩타이드 6종 중에서 BPC-157과 TB-500은 근육과 힘줄, 인대의 회복을 촉진하고 상처를 빨리 낫게 한다는 입소문을 타며 미국 피트니스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바이오 해커와 웰니스 인플루언서가 이런 유행을 주도했다. 바이오 해커는 식단과 운동, 약물과 보충제 등을 이용해 신체 능력과 수명을 스스로 향상하려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이 펩타이드 사용 경험을 소개하면서 대중적 관심이 커진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 '울버린'의 상처가 빠르게 재생되는 능력에서 이름을 딴 '울버린 스택'도 인기다. 이는 BPC-157과 TB-500 등 여러 펩타이드를 함께 사용하는 조합이다.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2026년 금지 목록에 BPC-157은 비승인 물질로, TB-500은 성장 인자 조절 물질 계열로 금지돼 있다.

◇"양성화로 암거래 방지" vs "오남용 위험 커질 것"

이번 FDA 자문위 결정은 팽팽한 표결 끝에 나왔다. BPC-157과 TB-500 등을 심의한 첫날 표결에서는 찬성 8명, 반대 6명, 기권 1명으로 조제 허용 쪽이 근소하게 앞섰다. 찬성 측은 이미 온라인 판매와 암시장에서 펩타이드가 유통되고 있는 만큼, 면허를 가진 약국과 의사의 관리 아래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오히려 위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와 성분을 알 수 없는 중국산 제품 등을 직접 구매하는 것보다는 미국 조제약국이 품질을 관리하는 편이 낫다는 논리다.

반면 FDA 소속 과학자들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안전성과 효능 확인 자료가 지나치게 부족하다며 반대했다. FDA에 따르면 BPC-157의 임상 연구는 규모가 작고 기간도 짧아 효과를 판단하기 어렵다. TB-500은 사람에게 투여한 연구를 찾지 못했다고 FDA는 밝혔다.

이처럼 안전성과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펩타이드는 체내에서 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고, 제조 과정에서 불순물이 섞일 위험도 있다. 비공식 경로로 유통되는 제품은 원료의 정체와 순도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사제로 만들 때는 위험이 더 커진다. 무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세균 감염이나 패혈증으로 이어질 수 있고, 성분 함량이 표시와 다르면 과다 투여나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제 허용 자체가 소비자에게 'FDA가 인정한 약'이라는 착시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에서 약국 조제가 가능해지면 원격 진료와 항노화 클리닉, 웰니스 업체들이 근육 회복과 체중 감량, 장수 효과를 앞세워 대대적으로 판매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서도 'FDA 승인' 오해 우려

한국에서도 미승인 펩타이드 제품 판매 정보가 온라인으로 유통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BPC-157과 TB-500 활용 방법을 소개하는 콘텐츠가 늘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매하거나 투여하는지 공식 통계는 아직 없다.

FDA가 조제를 허용하더라도 한국에서 이 펩타이드의 처방과 판매가 자동으로 합법화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의약품을 제조하거나 수입·판매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 허가 등 관련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미국 조제약국에서 쓸 수 있는 원료 목록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국내에서 허가받은 의약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의 규제 변화가 국내 소비자의 경계심을 낮출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펩타이드 판매 업체가 'FDA 승인'처럼 광고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들이 FDA의 약국 조제 허용을 펩타이드 효능과 안전성 검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FDA는 자문위 권고와 향후 의견 수렴 결과 등을 검토해 각 펩타이드를 약국 조제 가능 물질 목록에 포함할지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결정까지 수개월 이상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FDA가 최종 규칙을 마련하기 전에 일정 조건을 충족한 조제 약국을 단속하지 않는 임시 방침을 내놓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의 규제 완화가 암시장을 통제하는 안전장치가 될지, 'FDA 인정'이라는 착시만 키워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펩타이드 시장을 넓힐지는 향후 조치에 달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