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안두릴이 판버러 국제에어쇼(FIA) 2026에서 공개한 '썬더(Thunder)'./영국 왕립 항공 협회

지난 20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중심부에서 약 50㎞ 떨어진 햄프셔주 판버러 국제에어쇼(FIA) 2026 전시장. 헬리콥터의 회전날개와 일반 비행기의 날개를 한 기체에 붙여놓은 듯한 회색 항공기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군복 차림의 각국 대표단은 기체 주변을 천천히 돌며 사진을 찍었고, 취재진은 전시 안내판과 동체를 번갈아 살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끈 기체는 미국 방산기업 안두릴과 전기항공기 업체 아처에비에이션이 이날 처음 공개한 공격무인기 '썬더(Thunder)'였다. 활주로 없이 수직으로 이륙한 뒤 회전날개를 앞으로 기울여 비행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실제 비행이 가능한 완성 기체가 아닌 실물 크기 모형이었지만, 유인 공격헬기보다 먼저 위험 지역에 투입한다는 운용 구상 때문에 군 관계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영국 판버러 에어쇼에 마련된 부스 모습./홍아름 기자

썬더에서 시선을 돌려 몇 걸음 옮기자 또 다른 무인기와 드론 요격체계, 저가형 방공미사일, 정찰위성 모형이 잇따라 나타났다. 민항기 엔진과 객실 모형이 놓인 전시관 사이를 정장 차림의 항공우주기업 관계자와 각국 대표단이 오갔고, 방산업체 부스 안쪽에서는 명함과 자료를 펼쳐놓은 채 상담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판버러 에어쇼는 프랑스 파리, 싱가포르 에어쇼와 함께 세계 3대 항공우주 전시회로 꼽힌다. 올해는 세계 각국의 기업과 기관 1636곳이 참가해 78년 역사상 최대 규모로 열렸고, 행사장 면적은 축구장 78개를 붙인 규모인 50만㎡에 달한다.

행사장을 직접 둘러보니 올해 판버러 에어쇼의 특징은 참가업체 수보다 전시물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대형 여객기와 전투기의 성능 경쟁을 넘어 무인화와 인공지능(AI), 값싼 대량 공격을 막는 방어 기술, 위성을 활용한 초연결 작전이 미래 항공우주 산업의 새로운 경쟁 분야로 떠오르고 있었다.

판버러 에어쇼 행사장 전경./판버러 에어쇼

◇ 72조원 민항기 수주전에도… 시선 끈 것은 '미래 전쟁'

개막 첫날의 중심은 민항기였다. 보잉과 에어버스는 항공기 임대회사와 항공사들로부터 대규모 주문을 확보했다. 영국 항공우주·방산·보안·우주산업 협회(ADS)는 개막 첫날 발표된 상업용 항공기 계약 규모가 362억파운드(약 72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확정된 항공기 주문은 234대로, 2024년 판버러 에어쇼 개막일보다 44% 증가했다.

케빈 크레이븐 ADS 최고경영자(CEO)는 "첫날 주문 실적은 글로벌 항공우주산업에 대한 신뢰가 여전히 높다는 분명한 신호"라며 "항공사들이 비행의 미래를 결정할 항공기와 기술에 계속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판버러 에어쇼 야외 전시장의 여객기./홍아름 기자

행사장에서는 대형 제조사들의 수주전 못지않게 방산업체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로이터는 올해 전체 참가업체의 절반가량이 방산기업이라고 보도했다. 판버러 에어쇼가 1948년 영국 항공산업을 소개하는 행사로 출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비율이다.

이는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값싼 공격용 드론이 대량으로 투입되면서 방공 기술의 관심사가 달라진 영향으로 해석된다. 성능이 뛰어난 미사일 한 발로 적 항공기 한 대를 격추하는 문제를 넘어, 수십·수백 대가 동시에 날아오는 저가 드론을 얼마나 싸고 빠르게 막을 수 있느냐가 새로운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미국 안두릴과 아처에비에이션이 공개한 '썬더(Thunder)'./안두릴

◇ 미사일 10발 싣는 '무인 동료기' 드론 떼는 전자기파로 막아

안두릴은 썬더를 아파치 같은 유인 공격헬기의 대체재가 아니라, 유인기보다 먼저 위험 지역에 들어가는 '무인 동료기'로 개발하고 있다. 저고도로 비행하는 공격헬기는 휴대용 지대공미사일과 대공포, 드론 공격에 노출되기 쉽다. 따라서 썬더가 먼저 적진에 침투해 정찰하거나 방공망을 공격하고, 적 드론으로부터 유인 헬기를 보호한다. 안두릴은 아파치 한 대와 썬더 3~6대를 함께 운용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기체 내부에는 임무에 따라 무장을 바꿔 실을 수 있다. 안두릴은 공대지 미사일 최대 10발, 소형 무인기 16기 또는 70㎜ 로켓 76발을 탑재하는 구성을 제시했다. 기수에는 적 드론을 막는 요격체계 최대 12기를 별도로 실을 수 있다. 비행은 안두릴의 자율운용 소프트웨어가 담당하며, 썬더의 첫 비행 목표는 2027년이다.

록히드 마틴의 모피어스 X-로터./록히드 마틴

전시장에서는 대량으로 날아오는 드론을 값싸게 막는 기술도 눈에 띄었다. 록히드마틴이 공개한 '모피어스(MORFIUS) X-로터'는 지상에서 발사된 무인기가 공중에서 고출력 마이크로파를 사용해 다수의 드론을 무력화하도록 설계된 대드론 체계다. 강한 전자기장이 드론 내부 회로에 비정상적인 전류를 유도해 장치를 마비시키는 원리다.

록히드마틴은 "모피어스 한 대가 한 번의 비행으로 드론 50대 이상을 무력화할 수 있다"며 "임무 후 기체를 회수해 재사용할 수 있고, 특정 사격통제 레이더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 전장의 새 공식, 유·무인 복합운용

한국관 앞에서 만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관계자는 이번 에어쇼에서 눈여겨 봐야 할 주제 중 하나로 유인기와 무인기를 함께 운용하는 '유·무인 복합체계'를 꼽았다. 사람이 탑승한 전투기가 작전을 주도하고 여러 대의 무인기가 정찰과 감시, 전자전, 타격 등을 맡는 방식이다.

그는 "항공기와 전투기는 임무를 수행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인명 손실이 없어야 한다"며 "KAI도 현재 무인기를 개발해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KAI는 이번 전시에서 KF-21 전투기와 무인전투기, 다목적 무인기, 초소형 합성 개구레이더(SAR) 통신위성 등을 연계한 차세대 공중전투체계 구상을 선보였다.

영국 판버러 에어쇼에 마련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부스./홍아름 기자

전시장에 놓인 무인기들은 크기와 임무가 달라도 대부분 외형이 닮아 있었다. 레이더에 탐지되는 면적을 줄이고 공기저항을 낮추기 위해 날개와 동체를 한 몸처럼 연결하거나 꼬리날개를 줄인 형태였다.

KAI 관계자는 "공학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이 비슷하다 보니 형상이 닮을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는 유인기가 작전을 운영하고 무인기가 이를 도우면서 작전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버러 에어쇼 행사장에 마련된 스페이스 존./홍아름 기자

◇ 항공·방산에 이어 우주도 '안보 인프라'로

방산과 함께 올해 판버러 에어쇼에서 존재감을 키운 또 다른 분야는 우주였다. 전투기와 무인기뿐 아니라 위성까지 하나의 작전망으로 연결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우주기술은 미래 공중전의 핵심 기반으로 떠오르고 있다. 주최 측도 별도의 스페이스 존을 마련해 위성과 우주 인프라 관련 기업·기관의 전시를 한데 모으고, 행사 기간 닷새 동안 전문 세션을 진행한다.

스페이스존에 들어서자 항공기 모형 대신 위성과 우주정거장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부스에서는 우주선 부품시험 장비, 지구관측과 위성통신 기술을 소개하는 기업과 기관을 볼 수 있었다. 한쪽 무대에서는 국제우주정거장(ISS) 퇴역 이후의 연구 환경과 우주기술의 안보 활용을 놓고 논의가 이어졌다.

영국 판버러 에어쇼 행사장을 찾은 레베카 에버든 영국우주청장(왼쪽 두번째), 요제프 아슈바허 유럽우주국(ESA) 사무총장(왼쪽 세번째)./홍아름 기자

이날 세션에서 우주기관장들이 강조한 것은 민간우주와 국방우주의 경계가 빠르게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레베카 에버든 영국우주청장은 "이제 민간우주와 국방우주를 따로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우주를 하나로 봐야 한다"며 "우주 기술의 대다수는 민간과 국방 분야에서 함께 활용되는 이중용도 기술"이라고 말했다.

요제프 아슈바허 유럽우주국(ESA) 사무총장은 안보와 주권을 이유로 유럽 각국이 국가별 우주 역량을 확대하는 흐름을 짚었다. 그러면서 "각국의 체계를 하나로 통합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