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언어는 약 3000~1000년 전 '황금기'를 맞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당시 세계에는 오늘날보다 최대 10배 많은 수만 개의 언어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AI 생성 이미지

성경은 바벨탑을 쌓던 인류의 말이 뒤섞이면서 세계 언어가 갈라졌다고 전한다. 과학자들이 인구와 수렵·채집 사회 자료를 토대로 지난 1만2000년의 언어 역사를 되짚은 결과, 인류의 언어는 수천 년 동안 늘어나 약 3000~1000년 전 '황금기'를 맞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세계에는 오늘날보다 최대 10배 많은 수만 개의 언어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1만2000년 전 언어, 지금보다 적었다

스페인 카탈루냐 고등연구원, 미국 하버드대 등 국제 공동 연구진은 이런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2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현재 세계에서 쓰는 언어 종류는 약 7500개다. 겉보기에는 충분히 많아 보이지만 실제 언어 세계는 소수의 '거대 언어'에 빠르게 잠식되고 있다. 영어와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 힌디어 등 사용자가 많은 언어 10개 가운데 하나를 쓰는 사람이 약 50억명에 이른다. 반면 나머지 언어의 절반은 소멸 위험에 놓여 있다.

연구진은 인류학자들이 조사·기록한 수렵·채집·어로 집단 가운데 171개 집단을 골라 분석했다. 당시 대체로 한 집단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했다. 연구진은 약 1만2000년 전에도 공동체 하나가 대략 언어 하나에 대응했을 것으로 보고 분석을 시작했다. 당시 세계 인구를 440만~700만명으로 놓고, 이 인구가 수렵·채집 공동체로 나뉘어 있었다면 언어가 몇 개였을지 계산했다. 분석 결과, 약 1만2000년 전 세계 언어는 4500~6200개로 추정됐다. 오늘날 언어 7500개보다 적은 수준이다. 이는 약 1만2000년 전 농경이 본격화하기 전에 언어 다양성이 정점을 찍었고, 이후 계속 감소했다는 기존 가설을 뒤엎는 결과다.

◇인구 증가가 낳은 '언어의 황금기'

언어 수가 늘어난 동력은 인구 증가였다. 농업과 목축이 시작되면서 안정적으로 먹을 것을 생산할 수 있게 됐고, 인류는 새로운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공동체가 갈라져 서로 떨어져 지내면, 같은 언어도 세대를 거치면서 발음과 단어 등이 달라져 별개의 언어로 분화한다.

연구진이 인구 증가와 언어 공동체 확대를 분석 모델에 함께 반영하자, 세계 언어 수는 약 1만2000년 전부터 수천 년 동안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0~1000년 전이었다. 이 시기 언어 수는 1만2000년 전보다 약 10배 많아져 수만 개에 달했다. 연구진은 이 시기를 '언어의 황금기'라고 불렀다.

◇제국의 팽창이 부른 언어 대멸종

언어 다양성은 대규모 국가와 제국이 성장하던 시기에도 한동안 증가했다. 하지만 제국의 팽창이 이어지자 작은 공동체 언어가 지배 집단 언어로 대체되면서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배 집단의 언어가 널리 퍼진 반면, 힘이 약한 소규모 집단은 세금과 재판, 교육과 교역에 유리한 제국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연구진 분석에 따르면 세계 언어 수는 지난 2000년 동안 특히 빠르게 감소했다. 연구진은 오늘날의 언어 약 7500개는 황금기 언어 수의 10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언어 위기가 15세기 이후 유럽의 식민지 팽창과 함께 비로소 시작됐다는 통념과 다르다.

연구진은 "식민 지배와 전쟁, 전염병이 근현대 언어 소멸을 크게 가속한 것은 분명하지만, 대규모 언어 교체는 고대의 다민족 제국과 대규모 국가가 팽창하던 시기부터 이미 진행됐다"고 했다.

이번 연구도 한계는 있다. 선사 시대 언어를 직접 조사한 것이 아니라 현대 수렵·채집 집단의 규모와 고대 인구 추정치를 이용해 계산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진도 "이번 분석은 특정 시대와 지역에서 언어가 줄어든 구체적 원인까지 밝혀내지는 못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