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먼섬의 황제 펭귄./서명호

황제펭귄 수만 마리가 모여 새끼를 키우는 남극 로스해의 쿨먼섬. 먹이가 풍부하고 바다 얼음도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세계 최대 규모의 황제펭귄 번식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해마다 2만마리 안팎의 새끼가 자라던 이곳에 지난해 뜻밖의 장벽이 나타났다. 길이 13.9㎞에 이르는 거대한 빙산이 번식지 앞바다에 멈춰 서면서 부모 펭귄들이 먹이를 구하러 오가는 길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해 확인된 새끼는 6658마리로, 1년 전보다 69%나 줄었다.

◇여의도 15배 크기 빙산, 번식지 앞을 막다

한국극지연구소와 서울대, 인천대 공동 연구팀은 남극 쿨먼섬 황제펭귄 번식지를 조사한 결과, 2025년 새끼가 6658마리로 집계돼 1983년 관측 이래 가장 적은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24일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에 발표했다.

2024년 2만1242마리였던 새끼 수가 1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팀은 황제펭귄 번식지에서 북쪽으로 3~5㎞ 떨어진 곳에 좌초한 대형 빙산을 새끼 수 급감과 관련된 주요 요인으로 지목했다. 빙산은 길이 약 13.9㎞, 폭 4㎞에 면적은 약 42.7㎢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15배에 달했다.

◇새끼 먹이 공급기에 나타난 불청객

위성 영상 분석 결과, 이 빙산은 2025년 3월 난센 빙붕에서 떨어져 나온 뒤 북쪽으로 이동해 지난해 7월 쿨먼섬 인근에 멈췄다. 황제펭귄은 매년 5~6월 알을 낳는다. 수컷이 겨울 동안 알을 품는 사이 암컷은 바다에서 먹이를 구하고, 7~8월 새끼가 부화하면 암수가 번갈아 바다와 번식지를 오가며 새끼를 먹인다. 황제펭귄 알이 부화하고 부모가 새끼에게 본격적으로 먹이를 공급하기 시작하는 시기와 빙산이 번식지 앞을 가로막은 시기가 겹친 것이다. 빙산은 주변 해빙이 사라진 2026년 1월 초까지 약 5개월간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부모 펭귄이 먹이를 구하러 바다로 나갔다 번식지로 돌아오는 길이 빙산 때문에 크게 제한되면서 갓 부화한 새끼가 굶어 죽을 위험이 커졌다는 것이다.

빙산과 쿨먼섬 동쪽 사이에는 폭 약 1㎞의 좁은 통로가 남아 있었지만, 펭귄들이 이 길을 찾으려면 빙산 가장자리를 따라 크게 우회해야 했다. 연구팀은 번식지에서 바다까지의 최소 이동 거리가 2024년 약 9.3㎞에서 2025년 14.9㎞로 60%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 이동 거리는 길을 찾는 과정에서 이보다 더 길었을 가능성이 있다.

◇번식지 멀쩡해도 통로 끊기면 치명적

실제로 연구팀은 현장에서 펭귄들이 빙산 남쪽의 얼음 절벽 앞에 모여 오랫동안 이동하지 못하는 모습도 관찰했다. 번식지에서 새끼 여러 마리의 사체도 발견했다. 연구팀은 부모 펭귄 일부가 우회로를 찾아 먹이 공급을 계속했지만, 초기에 통로를 찾지 못한 무리의 새끼들이 집중적으로 폐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연구는 해빙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 상황에서도 빙산의 위치와 형태에 따라 번식지와 먹이터 사이의 '기능적 연결'이 끊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번식지와 먹이터가 그대로 있어도 둘을 잇는 통로를 빙산이 막으면 번식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조사가 한 번의 번식기에 나타난 현상을 분석한 관찰 연구인 만큼, 빙산 좌초가 새끼 감소를 직접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먹이의 양이나 날씨 등 다른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