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방의과대학 연구진은 서양뒤엉벌 18개 군집을 대상으로 맛 자극에 대한 반응을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조선DB

벌이 달콤한 설탕물을 맛보자 사람이 입맛을 다시듯 혀를 쭉 내밀었다. 쓰거나 짠 물을 맛봤을 땐 머리를 흔들고 입을 닦았다. 이처럼 벌이 맛에 따라 '좋고 싫음'을 드러내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곤충에게서 이런 반응이 관찰된 것은 처음이다.

중국 남방의과대학 연구진은 뒤엉벌 18개 군집을 대상으로 맛 자극에 대한 반응을 분석한 결과, 벌이 자극에 기계적으로만 반응하는 게 아니라 주관적 평가에 가까운 행동을 보였다고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최근 발표했다. 그동안 벌이 숫자를 세거나 리듬을 타는 등 복잡한 행동을 한다는 연구는 있었지만, 곤충에게 감정과 비슷한 내적 상태가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연구진은 벌에게 설탕물과 소금·퀴닌(쓴맛 물질)을 탄 물방울을 각각 주고 고해상도 영상으로 반응을 기록했다. 벌은 단물을 맛본 뒤 꿀을 빨 때 쓰는 털 달린 혀 '글로사'를 반복해 내밀었다. 짜거나 쓴 물을 맛본 뒤에는 머리를 흔들고 입을 닦았다. 연구진은 이런 반응이 포유류를 제외하면 관찰된 적 없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벌의 몸 상태가 맛에 대한 평가를 바꾸는지도 실험했다. 설탕물 농도를 낮추고 소금을 섞자 혀를 내미는 반응이 크게 줄었다. 반대로 벌을 섭씨 40도 환경에서 탈수 상태로 만든 뒤 같은 짠물을 주자 벌은 다시 혀를 내밀었다. 오래 운동한 사람이 평소엔 밍밍하던 전해질 음료를 맛있게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맛 자체뿐 아니라 벌의 몸속 상태가 반응을 바꾼 것이다.

연구진은 벌이 무언가를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분하는지도 실험했다. 포유류 연구에서는 이 두 상태에 서로 다른 뇌 회로가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먹이를 찾으려는 동기와 관련된 도파민을 주자 벌은 설탕물을 더 적극적으로 찾았지만, 혀를 내미는 반응은 늘지 않았다. 반면 쾌감과 관련된 엔도카나비노이드를 주자 혀 내밀기가 늘었다. 연구진은 이 결과가 벌에게도 '원함'과 '좋아함'을 구분하는 내부 평가 체계가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연구진은 "1㎎도 안 되는 작은 뇌가 나름의 내면을 지탱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다만 벌이 사람처럼 즐거움을 느낀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정 표현이 곧 감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어서, 표정 같은 반응을 감정의 증거로 보기엔 비약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벌이 실제로 무엇을 경험하는지는 아직 모른다"면서도 "다만 실험으로 다룰 수 있는 내면의 단서를 확보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