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뇌 속 노폐물을 씻어내는 뇌척수액이 뇌 보호막을 빠져나가는 미세한 구멍을 처음 발견했다. 노화로 좁아진 노폐물 배출길을 다시 넓혀 뇌척수액 흐름을 회복시키는 동물실험에도 성공했다. 치매를 비롯한 퇴행성 뇌질환의 새로운 치료법을 찾는 데 단서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고규영 혈관 연구단장 연구팀이 뇌척수액이 뇌를 감싼 보호막을 통과해 림프관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규명했다고 22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셀'에 실렸다.
뇌에서는 신경세포가 활동하는 동안 끊임없이 노폐물이 생긴다. 뇌와 척수를 둘러싼 뇌척수액은 충격을 흡수하는 동시에 아밀로이드 베타 같은 노폐물을 씻어 밖으로 내보낸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알츠하이머병 환자 뇌에서 배출되지 않고 쌓이는 대표적인 노폐물이다.
문제는 뇌척수액이 뇌 밖으로 나가는 첫 길목이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는 점이다. 뇌는 세 겹의 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뇌척수액은 안쪽에 흐르지만, 노폐물을 몸 밖으로 운반하는 림프관은 바깥쪽에 있다. 뇌척수액이 코 주변의 림프관을 거쳐 목 림프절까지 이동한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중간에 놓인 질긴 보호막을 어떻게 통과하는지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였다.
연구진은 림프관이 형광빛을 내도록 만든 생쥐를 전자현미경과 3차원 영상 기술을 이용해 뇌 앞쪽을 살펴봤다. 그 결과 뇌 보호막 곳곳에서 뇌척수액이 통과할 수 있는 미세한 구멍을 찾아냈다. 연구진은 이 미세한 구멍을 '지주막 소창'이라고 이름 붙였다. 뇌 보호막에 난 작은 창문처럼 뇌척수액이 빠져나가는 첫 관문이라는 뜻이다.
뇌척수액에 형광 물질을 넣어 흐름을 추적하자 '뇌 청소길'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형광 물질은 지주막 소창을 빠져나온 뒤 뇌막 림프관으로 들어갔다. 이어 뇌와 코 사이의 얇은 뼈를 지나 코 안쪽 림프관으로 이동했고, 마지막에는 목 깊숙한 곳의 림프절에 도달했다. 뇌 속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시작점부터 마지막 도착지까지 경로를 확인한 것이다.
나이가 들면 이 배출길도 좁아졌다. 늙은 생쥐에서는 지주막 소창의 크기가 줄고 주변 림프관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와 코 사이의 통로까지 좁아지면서 뇌척수액 배출량도 크게 떨어졌다.
연구진은 늙은 생쥐의 코 안 점막에 림프관 생성을 돕는 'VEGF-C' 유전자를 투여했다. 그러자 코와 뇌 앞쪽 주변에서 림프관이 다시 자랐고, 좁아졌던 배출길도 넓어졌다. 떨어졌던 뇌척수액 배출 기능은 젊은 생쥐와 비슷한 수준까지 회복됐다.
코를 통해 치료 물질을 전달하면 뇌를 직접 수술하지 않고도 노폐물 배출길을 조절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다만 치매 증상이나 기억력이 좋아진 것은 확인하지 않았다. 생쥐의 뇌척수액 흐름을 회복시킨 단계로, 실제 치료법으로 개발하려면 사람에게서도 같은 구조와 효과가 나타나는지 확인해야 한다.
연구진은 사람과 가까운 영장류에서도 비슷한 지주막 소창을 확인했다. 고규영 단장은 "뇌 노폐물 배출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목 림프절까지 이어지는 전체 구조를 이해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했다. 홍선표 연구위원은 "앞으로 사람 조직에서도 같은 구조를 확인하고, 퇴행성 뇌질환에 적용할 치료 전략을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