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김성규

한국인 수명이 지난 33년간 11년 넘게 늘었지만, 건강하게 사는 기간은 9년 정도만 늘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의학 발달로 더 오래 살게 됐지만 질병이나 장애를 안고 아프게 보내는 기간도 2년 넘게 길어진 것이다. 같은 기간 세계 평균 수명은 9년 늘고, 건강 수명은 7년 늘었다.

미국 워싱턴대 의과대학 보건계량분석연구소(IHME) 연구진은 1990년부터 2023년까지 세계 204국의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을 분석한 결과를 22일 국제 학술지 '랜싯 공중보건'에 발표했다.

건강수명은 질병이나 장애 없이 건강하게 살 것으로 예상되는 기간이다. 기대수명에서 건강수명을 뺀 기간은 질병이나 장애를 안고 사는 '유병기간'이라는 의미다.

분석 결과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990년 71.7세에서 2023년 83.4세로 11.7년 늘었다. 204개국 가운데 7위다. 같은 기간 건강수명은 62.4세에서 71.8세로 9.4년 증가해 세계 4위였다. 기대수명이 건강수명보다 빠르게 늘면서 유병 기간은 9.3년에서 11.6년으로 2.3년 길어졌다.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보내는 기간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세계 평균 기대수명은 같은 기간 64.6세에서 73.8세로 9.2년 늘었다. 건강수명은 55.9세에서 63.1세로 7.2년 증가했고, 유병 기간은 8.7년에서 10.7년으로 2년 길어졌다.

역설적으로 부유한 나라일수록 유병기간이 길었다. 2023년 미국은 평균 14년으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가장 길었다. 호주가 13.9년, 캐나다가 13.7년으로 뒤를 이었다. 고소득 국가 평균은 12.7년이었고, 상대적으로 저소득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나라들은 9년이었다.

그래픽=김성규

다만 저소득 국가의 유병기간이 짧다고 건강 상태가 더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소득 국가에서는 의료 기술 발달로 사망에 이르게 했을 질환을 치료하며 더 오래 살 수 있게 됐지만, 관절 질환이나 당뇨병, 정신질환 같은 만성질환을 안고 지내는 기간도 함께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의료 여건이 열악한 나라에서는 질병을 앓은 뒤 이른 나이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아픈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게 잡혔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오래 살지만 유병기간도 더 길었다. 2023년 여성의 유병기간은 평균 12.1년으로, 남성의 9.3년보다 2.8년 길었다. 경제·사회 발전 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지역에서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유병기간을 가장 많이 늘린 질환은 허리 통증을 비롯한 근골격계 질환이었다. 우울증·불안장애 같은 정신질환과 청력 저하, 낙상과 각종 사고가 뒤를 이었다. 생명을 곧바로 위협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질환들이 전체 아픈 기간의 57.4%를 차지했다.

연구진은 보건정책의 목표를 단순히 수명을 늘리는 데서 건강하게 사는 기간을 늘리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인구 건강의 발전은 얼마나 오래 사는지만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건강하게 사는지로 평가해야 한다"며 "예방과 만성질환 관리, 재활·정신건강 서비스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