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검은돌치./극지연구소

극지연구소는 남극 물고기에서 근육의 재생과 성장을 조절하는 단백질과 그 작동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21일 밝혔다.

의학계에서는 노화로 인한 근감소증과 암 같은 질병이 유발하는 극심한 근육 소모 '악액질(cachexia)' 치료제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2024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은 근감소증을 앓고 있다. 하지만 기존 후보 물질들은 전신 대사 장애, 인슐린 저항성, 발암 위험 등의 부작용이 한계로 지적됐다. 이 난제를 해결할 새로운 대안이 남극에서 발견된 것이다.

극지연구소 김진형 박사, 가천대학교 윤미섭 교수 공동 연구팀은 극한 저온과 높은 활성산소 환경의 남극 바다에 서식하는 남극검은돌치(Notothenia coriiceps)의 근육에서, 세포가 온도 변화나 물리적 충격을 받을 때 손상된 부분을 보호·복구하는 열충격단백질의 일종인 'Dnajb5'가 작동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분석 결과, 이 단백질은 평상시 근육 안에서 단백질 합성을 지시하거나 에너지 생산을 조절하는 물질들과 각각 결합해 두 경로를 동시에 억제하는 '이중 브레이크'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근육이 손상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결합력이 약해지면서 브레이크 시스템이 해제된다.

실제 근육이 손상된 실험용 쥐에서 Dnajb5 발현을 억제하자 재생되는 근섬유의 단면적이 대조군보다 약 26% 증가하며 근육 재생이 눈에 띄게 촉진됐다. 운동 능력도 향상됐는데, Dnajb5를 억제한 실험군은 대조군 대비 근력(악력)이 14% 향상됐으며, 지구력 테스트에서도 31% 더 오래 버텼다. 두 개의 브레이크가 함께 해제되면서, 근육의 물리적 강도와 세포 내 대사 효율이 동시에 높아진 결과라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김진형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Dnajb5는 유독 근육 조직에 풍부하게 들어 있다"며 "이 단백질만 골라서 제어하면, 기존 치료제의 전신 부작용을 줄이고 근육에만 안전하게 재생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근육학과 노인의학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인 '악액질·근감소·근육 저널' 최신호에 게재됐다.

신형철 극지연구소장은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온 극지 생물의 생존 전략이 인류의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성과"라며 "극지 생물 자원의 가치와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 계기"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