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의 '미토스'급 한국형 프런티어 인공지능(AI) 개발에 엔비디아의 차세대 '베라 루빈'급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장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GPU 구매비만 약 3조5000억원으로, 데이터센터와 전력·냉각 설비 등을 포함하면 전체 투자비는 이보다 더 많이 든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20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독자(소버린)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에서 지원하는 정도로는 미토스급 프런티어 모델을 개발하기 어렵다"며 "베라 루빈급 GPU 약 1만장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재 독자 AI 개발 사업 참여 기업에는 엔비디아 B200 GPU가 각각 약 500∼735장 지원되고 있다.
배 부총리는 "베라 루빈 1만장의 현재 가격이 약 3조5000억원"이라며 "이는 GPU를 구매하는 비용이고, 부대 비용을 합치면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속 네트워크와 데이터센터, 전력·냉각 시설 등에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배 부총리는 "미토스가 보안에만 특화된 모델이라기보다 범용 성능이 뛰어난 프런티어 모델이어서 보안 문제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현재 진행 중인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과 프런티어 AI 개발을 구분한 '투 트랙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독자 AI 사업은 공공기관과 기업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국산 모델을 확보해 산업 전반의 AI 전환을 촉진하는 것이 목표다. 이와 별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AI 모델을 개발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배 부총리는 프런티어 AI 개발이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의 AI 주권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런티어급 AI 모델은 핵무기처럼 국가가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며 "미국에 이어 중국의 공개형 모델도 영향력이 충분히 커지면 폐쇄형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 AI 서비스가 갑자기 중단되거나 가격이 20배, 100배로 오르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며 독자 모델과 프런티어 모델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한국형 AI 모델과 서비스, AI 반도체 등을 묶은 'AI 풀스택'을 기반으로 유럽연합(EU)·중동·아세안 등과 AI 연합체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배 부총리는 "한국도 세계 최고 수준의 AI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프런티어 모델에 도전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프런티어 AI 개발 사업 추진과 내년도 예산 반영 여부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배 부총리는 "여러 자리에서 논의하며 방향을 정해 가고 있다"며 "AI 3대 강국을 넘어 세계 AI 분야에서 리더십을 갖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도전이 필요하다고 설득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프런티어 AI 모델을 개발하는 동안 기존 국산 AI를 활용한 보안 특화 모델도 별도로 추진한다. 기존 모델에 소프트웨어 취약점과 사이버 공격 관련 데이터를 추가 학습시키면, 현재 기술로도 보안 취약점을 탐지하는 특화 AI를 개발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과기정통부는 보안 특화 AI 모델 개발에 연내 착수해 올해 안에 공공 부문에서 먼저 적용할 계획이다. 민간 부문 적용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를 목표로 검토하고 있다.
배 부총리는 "당장 프런티어 모델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현재 보유한 모델을 보안 데이터로 미세 조정하면 여러 취약점을 점검하는 '보안 특화 AI 모델'은 만들 수 있다"며 "올해 안에 개발해 공공 부문부터 적용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부는 프런티어 AI처럼 수조원대 투자가 필요한 대형 연구·개발 사업을 지원하는 방식도 별도로 검토하고 있다. 기존처럼 기업에 연구비를 출연하는 방식뿐 아니라, 정부가 특수목적법인(SPC)이나 펀드에 참여해 지분을 갖는 '투자형 연구·개발(R&D)'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배 부총리는 조직문화 혁신을 이어가려면 장관의 재임 기간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는 "새로운 장관이 오면 그동안 추진한 조직문화와 신뢰·소통의 방식이 다시 바뀌거나 무너질 수 있다는 염려가 있다"며 "AI 대전환과 과학기술 강국을 위한 준비에서 좋은 성과를 낸다면 제게도 계속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