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출신 화가인 얀 브뤼헐 1세는 1611년 '공기'라는 그림을 그렸다. 그리스 신화에서 천문학을 관장하는 여신인 우라니아를 중심으로 하늘을 나는 동물 60여 종(種)이 캔버스를 채우고 있다. 공기라는 개념을 하늘을 나는 생명체들에 빗대 전달한 알레고리화(畫)다. 스페인 과학자들은 프랑스 리옹 미술관에 전시된 이 유화(油畫)에서 익숙한 존재를 발견했다. 그림 오른쪽 위 구석에 작게 그려진 박쥐 한 마리였다.
박쥐는 새가 아니지만 엄연히 하늘을 나는 동물이다. 브뤼헐이 공기의 알레고리로 택한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과학자들은 다른 데 주목했다. 박쥐는 작은 새를 입에 물고 있었다. 도냐나 생물학 연구소 과학자들은 6월 29일 국제 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17세기 유화를 통해 유럽의 큰멧박쥐가 밤중에 공중에서 새를 잡아먹는 행동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이 동식물의 행동과 생태를 밝히는 자연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성모(聖母)가 그려진 제단화에 등장한 이국적인 조류를 통해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국제 무역로가 밝혀졌으며, 어물전을 그린 정물화는 해양 생태계 변화와 어업 기술의 발전 과정을 보여줬다. 캔버스가 과학에 앞서 자연을 기록한 수단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4세기 앞서 박쥐 생태 기록한 화가
과학계는 유럽에서 가장 큰 박쥐인 큰멧박쥐가 밤에 철새를 공중에서 사냥하는지를 두고 25년 동안 논쟁을 벌였다. 2000년 박쥐 배설물에서 새의 깃털이 나왔다는 논문이 나오고, DNA 분석을 통해 매년 같은 시기에 비슷한 철새들이 희생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박쥐가 땅에 떨어진 새를 먹었는지, 하늘에서 직접 사냥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배설물에서 나온 깃털의 주인공은 몸무게가 박쥐의 절반 정도였다. 그런 새를 공중에서 잡아먹었다면 사람이 조깅하면서 35㎏ 무게의 동물을 잡아먹는 것과 같다는 반박이 이어졌다. 사냥했다고 추정한 시간도 한밤중이어서 눈으로 증거를 포착하기도 어려웠다.
마침내 25년간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결정적 증거가 지난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덴마크 오르후스대와 스페인 도냐나 생물학 연구소 과학자들은 박쥐에 초소형 녹음기와 위치 추적기, 가속도 센서를 달아 한밤중의 공중전을 추적했다. 과학자들은 그렇게 수집한 정보로 칠흑 같은 어둠 속 1㎞ 상공에서 벌어진 사냥을 재구성했다.
새들은 박쥐를 피해 나선을 그리며 급강하했지만 3분간 추적 동안 가속도를 3배나 높인 박쥐를 피하지 못했다. 나중에 보니 땅에 새의 날개가 떨어져 있었다. 연구진은 새의 비명과 박쥐의 씹는 소리가 담긴 녹음을 토대로, 박쥐가 공중에서 꼬리와 뒷다리 사이의 비막(飛膜)으로 사냥한 새를 붙잡고 거추장스러운 날개는 떼고 나머지를 먹었다고 추정했다. 얀 브뤼헐의 그림을 분석한 연구진은 이제야 현대 과학이 알아낸 사실을 400년 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물론 브뤼헐이 박쥐의 사냥 순간을 그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림은 풍경화가 아니라 공기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새는 빛, 박쥐는 어둠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배치됐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연구진은 그림 속 박쥐가 정확히 새를 입에 물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림에 다른 박쥐 두 마리도 있지만 새를 물고 있는 박쥐만 몸집과 귀·날개가 큰멧박쥐를 많이 닮았다. 연구진은 브뤼헐이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박쥐를 관찰했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앵무새가 전달한 징검다리 무역로
그림이 자연사 연구의 소재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호주 멜버른대의 헤더 돌턴 박사는 2014년 국제 학술지 '르네상스 연구'에 이탈리아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가 1496년 완성한 제단화 '승리의 성모'에서 당대 국제 무역로를 알려주는 단서를 찾았다고 밝혔다. 성모의 머리 위 구조물에 몸통이 하얗고 검은 부리를 가진 앵무새가 앉아 있다. 돌턴 박사는 호주와 뉴기니, 인도네시아 일대에만 사는 큰유황앵무라고 밝혔다.
앵무새는 성모화에 자주 등장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사람 말을 흉내 내는 앵무새가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에게 아기 예수의 잉태를 알리며 건넨 인사인 '아베 마리아(Ave Maria)'를 말할 수 있는 새로 여겨졌다. 앵무새가 성모화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돌턴 박사는 그림 속 앵무새가 정면을 보고 있고 볏이 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정된 상태로 살아있는 모습을 그렸다고 추정했다. 박제를 보고 그린 그림에는 주로 볏이 선 옆 모습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앵무새가 그 멀리 이탈리아까지 갔을까. 유럽 선박이 호주에 도착한 것은 1606년이었다. 만테냐가 성모화를 그린 15세기에는 아직 유럽이 호주와 직접 무역을 할 수 없었다. 돌턴 박사는 앵무새가 중국이나 인도, 아라비아 상인의 손을 거쳐 이탈리아까지 갔다고 추정했다. 이는 13세기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 황제가 쓴 사냥 안내서가 뒷받침한다.
이 책에도 흰 깃털을 가진 유황앵무의 그림이 있다. 특히 유황앵무가 당시 이집트를 다스리던 바빌론의 술탄이 바친 선물이라고 기록됐다. 술탄은 중국과 인도, 중앙아시아 상인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그렇다면 2세기 후 이탈리아도 비슷한 징검다리식 무역 경로로 앵무새를 손에 넣었다고 볼 수 있다.
생태계 변화와 기술 발전까지 기록
그림에서 생태계의 장기 변화도 읽을 수 있다. 2021년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 연구진은 유럽에서 1500~1800년에 제작된 그림 73점에 나오는 어류·갑각류·연체동물을 분석했다. 그림은 해당 지역에 대한 생태 보고서나 마찬가지였다. 대서양·북해 지역 화가들의 그림에는 청어와 대구 등 대서양 동물이, 지중해 지역 그림에는 해당 바다의 동물이 주로 나타났다.
그림에 그려진 어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전반적으로 종류가 줄었다. 특히 강과 호수에 사는 민물고기와 바다와 강을 오가는 회유성 어종의 감소세가 뚜렷했다. 연구진은 지난해 이탈리아 정물화로 범위를 좁혀 분석했다. 마찬가지로 16~17세기 시장이나 연회장, 부엌을 그린 정물화에는 민물·회유성 어류가 자주 등장했지만, 18세기로 가면 그 비율이 절반가량 줄었다. 대신 먼바다 해저에 사는 물고기가 늘었다.
연구진은 그림의 변화를 단순히 생태계 변화만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17세기 이후 어업 기술이 발전하면서 먼바다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됐고, 운송·염장·보존 기술도 발달했다. 특히 수심이 얕은 아드리아해에서는 저인망 어업이 발전하면서 가자미와 아귀, 가오리처럼 바다 밑바닥에 사는 물고기들이 그림에 자주 등장했다. 정물화는 생태계의 기록인 동시에 어업의 발전을 보여주는 기술사 자료인 셈이다.
농업의 발전도 그림으로 추적할 수 있다.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스탄키가 그린 정물화를 보면 수박이 오늘날과 달리 속이 옅은 색이고 붉은 과육이 소용돌이처럼 나뉘어 있다. 오늘날 수박처럼 선명한 붉은 과육의 단면을 보여주는 그림들은 18세기 후반부터 많아졌다. 그림을 식물학·농학 자료와 함께 비교하면 수박의 과육과 형태가 선택 육종을 거치며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볼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의 찰스 데이비스 교수와 중국 푸단대의 류자자 교수는 지난 3월 '아이사이언스'에 발표한 종설 논문에서 캔버스 위의 자연사가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미술관·박물관 소장 작품의 고해상도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인공지능(AI)이 분석할 대상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AI 이미지 검색 결과를 다른 역사·과학 자료와 교차 검증할 수 있다면 그림 수백만 점에서 특정 동물과 행동을 찾아내는 작업이 자동화될 수 있다. 미술관과 박물관의 디지털 수장고가 자연사 연구실로 변신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참고 자료
PNAS(2026), DOI: https://doi.org/10.1073/pnas.2536525123
iScience(2026), DOI: https://doi.org/10.1016/j.isci.2026.114873
Science(2025),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r2475
npj Biodiversity(2025), DOI: https://doi.org/10.1038/s44185-025-00103-8
Ecology and Society(2021), DOI: https://doi.org/10.5751/ES-12740-260426
Renaissance Studies(2014), DOI: https://www.jstor.org/stable/24423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