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를란트(Saarland)주의 강점은 '연결성(short ways)'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의 다른 지역보다 혁신을 아주 빠르게 실행할 수 있다는 뜻이죠"
지난 15일(현지 시각) 독일 자를란트주 자르브뤼켄에 있는 메카트로닉스 및 자동화기술센터(ZeMA)에서 만난 수잔 풀럼 교수는 자를란트주 내 정치권과 기업, 연구기관의 의사결정권자 사이의 물리적·사회적 접근성이 좋아 공동 프로젝트나 기술사업화를 빠르게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구 약 100만명으로 독일 내에서 인구와 경제 규모가 둘째로 작은 자를란트주는 과거 석탄·철강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했지만 석탄 산업 쇠퇴와 전통 제조업의 구조전환 속에서 첨단 산업 투자를 확대해 왔다.
지난달 자를란트주는 '자를란트 공학연구소(Saarland Engineering Institute, SEI)'를 공식 출범시켰다. 그동안 연구 주체들의 개인적인 관계에 의존하던 협력을 제도화한 것이다. 기존 기관 지원금 외에 주정부 예산 3380만유로(약 580억원)가 추가로 투입된다. 주요 연구기관과 대학 등 첨단 연구 역량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고 빠른 의사결정 속도를 바탕으로 작은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SEI의 주요 목표는 크게 세 가지다. 자를란트주 내 공학 연구기관과 대학·산업계를 연결하는 공식 협력 플랫폼 구축, 자를란트의 연구역량의 대외 홍보, 공학 인재 양성이다. 큰 기둥은 ZeMA, 지능형 재료시스템센터(CiMS), 수소응용기술전환센터(HyCATT)까지 세 곳이다.
ZeMA는 독일 BMW 등과 협력한 자동차 부품 조립 자동화, 로봇과 제조 인공지능(AI)에 주력한다. CiMS는 형상기억합금·전기활성고분자 등 스마트 소재를 실제 제품까지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HyCATT은 자를란트주의 전통적인 제조기업들이 수소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수소 생산부터 저장, 유통, 활용까지 전체 밸류체인에 걸친 응용기술을 제공한다.
풀럼 교수는 "우리에게 혁신은 기초연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사업모델과 새로운 응용 분야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원 부처인 자를란트주 경제부의 가장 큰 관심도 사업모델"이라며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지역 경제가 어떻게 이익을 누릴 수 있느냐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SEI가 공학 분야의 연구 역량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라면, 자르브뤼켄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생태계도 촘촘하게 형성돼 있다. 자를란트대를 중심으로 독일인공지능연구센터(DFKI), 막스플랑크 정보학·소프트웨어시스템연구소, 프라운호퍼 비파괴검사연구소 등 분야별 연구기관이 밀집해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도 30년 전 자를란트대 캠퍼스 내에 유럽연구소를 열고 과학기술 협력을 이어 오고 있다.
이러한 기관 간 연결과 집적 효과는 공학뿐 아니라 의약 연구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2009년 헬름홀츠감염연구센터(HZI)와 자를란트대가 공동 설립한 헬름홀츠 의약연구소(HIPS)는 공공연구를 통해 천연물에서 새로운 항생제 후보물질을 찾고 있다. 다제내성 미생물, 이른바 슈퍼박테리아의 위협은 커지고 있지만 항생제는 수익성이 낮아 제약사가 투자를 꺼리는 분야다.
크리스티네 베멜만스 HIPS 미생물 유래 항감염제 연구부문장은 "항암제는 몇 달에서 몇 년, 심혈관질환 의약품은 평생 복용할 수도 있다"며 "항생제는 잘 들을수록 치료가 빨리 끝난다"고 설명했다. 치료 성과가 높을수록 복용 기간과 판매량이 줄어드는 시장 구조 때문에 공공 연구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HIPS 연구진은 흙 속에 사는 포식성 미생물인 믹소박테리아(Myxobacteria)가 만드는 항균 물질을 신약으로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HIPS 건물 내에서 믹소박테리아 배양부터 대사산물 추출, 정제, 평가까지 신약 발굴에 필요한 과정이 모두 이뤄진다. 각 연구실 특성에 따른 AI 도입도 활발하다.
최근 HIPS의 연구 인력과 분야가 늘어나면서 시설도 확장 중이다. 올해 완공된 두 번째 확장 건물은 9월 공식 개관 예정으로 일부 연구진이 입주해 연구를 시작했다. 세 번째 연구동은 2029년 완공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