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본고장에 가보니, 왜 한국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못 받고 일본은 많이 받는지 알게 됐습니다. 연구 실적은 밀리지 않는데, 결국 네트워크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국내 메타물질 석학이 노벨상의 본고장에 초청받았다. 노준석(45) 포스텍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전자전기공학과·융합대학원 교수는 지난 1일까지 스웨덴 우메오대에서 열린 노벨 심포지엄에서 메타물질 대량 생산 연구를 발표했다. 노벨 심포지엄은 노벨상을 수여하는 노벨재단이 1965년부터 개최한 국제 학술 대회다. 노벨상 수상 분야를 미리 가늠하는 풍향계로도 통한다. 올해 주제는 메타물질과 양자 컴퓨팅이었다.
지난 7일 조선일보 본사에서 만난 노준석 교수는 "노벨 심포지엄에 초청받은 한국 연구자는 제가 박남규 성균관대 종신석좌교수 이후 두 번째라고 들었다"고 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25명의 메타물질 분야 석학 중에선 최연소 연구자다.
노 교수는 빛의 방향을 마음대로 꺾을 수 있는 메타물질 연구 권위자로 꼽힌다. 우리가 물건을 볼 수 있는 것은 물건에 부딪혀 튕겨나온 빛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메타물질을 쓰면 빛이 물건을 그냥 비껴가게 만들 수 있다. 이론적으로 '투명 망토'도 가능하다. 노 교수는 이 메타물질을 우리가 매일 쓰는 렌즈에 적용했다.
메타렌즈는 일반 렌즈보다 빛을 마음대로 꺾을 수 있어 볼록하게 깎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월등히 얇고 가벼우면서도 광학 성능은 뛰어나다. 올해는 이 메타렌즈 생산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비용은 줄이는 기술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메타렌즈를 활용한 인공지능 안경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올해 말 미국 실리콘밸리에 창업해 빅테크 AI 기기에 경량화 렌즈 소재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번 심포지엄에 참석하면서 노 교수는 노벨상을 정하는 방식과 문화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노벨상은 스웨덴 한림원 회원들이 저마다 연구 주제와 후보를 발제하고, 한 사람씩 투표하는 구조"라며 "연구를 잘하는 건 기본이고 결국 여러 사람의 입김이 중요하더라"고 했다. 일본은 이런 배경을 잘 파악하고 활용하는 나라다. 노 교수는 "많은 스웨덴 교수가 일본에 장기 체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의 연구 성과와 연구자를 접하고 관계를 쌓는다"면서 "반면 국내엔 실력과 성과는 충분한 분이 많지만, 노벨상 후보로 추천받기 위해 필요한 네트워크를 쌓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했다.
노 교수 역시 지난해 포항에 찾아온 한 스웨덴 교수에게 연구실과 메타물질 생산 설비를 보여주고 식사를 대접한 뒤 노벨 심포지엄 초청장을 받게 된 경우다. 그는 "나중에야 이 교수가 미쉐린 심사위원처럼 암행 평가를 했음을 알았다. 이때 만나지 못했다면 초청도 못 받았을 것"이라면서 "우리 정부도 일본처럼 (노벨상) 유력 후보군을 꾸준히 관리하고 스웨덴 학계와 교류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