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호 기자 97세에도 매일 서울대 캠퍼스로 출근하는 조완규 국제백신연구소(IVI) 한국후원회 상임고문은 "하루에 1만 보씩 걷고, 적게 먹는 것이 건강 비결"이라며 "욕심을 내려놓고 사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현미경이 사실상 유일한 연구 장비였던 6·25전쟁 직후의 실험실에서 출발해 포유동물 난자 성숙의 원리를 밝히고, 한국 바이오 산업의 길을 연 조완규 전 서울대 총장이 13일 98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교육부 장관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초대 원장을 지내며 연구와 교육, 과학 행정 전반에서 한국 생명과학의 기틀을 세웠다.

1928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2년 서울대 문리대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전쟁 직후 학과에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되찾은 현미경이 유일한 연구 장비였다. 그는 현미경 주변을 합판으로 둘러싸고 전구를 넣어 섭씨 37도를 유지하는 장치를 만든 뒤, 스트렙토마이신이 생쥐 백혈구의 움직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석사 논문을 썼다.

장비가 부족해 '종이와 연필로 할 수 있는 연구'에도 눈을 돌렸다. 병원의 출산 기록과 주부들의 출산 경력을 조사해 한국의 출생 성비가 여아 100명당 남아 약 110명이라는 결과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고운호 기자 조완규 전 서울대 총장이 지난해 11월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내 국제백신연구소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1957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뒤엔 포유동물 난자의 성숙 과정을 집중 연구했다. 1970년대에는 난자와 초기 배아를 소량의 배양액이 든 유리관에서 배양·운반하는 '미세관 배양법'을 개발했다. 기존 방식보다 배양액 사용을 크게 줄이면서도 먼 곳까지 살아 있는 상태로 옮길 수 있었다.

고인은 1984년 유전공학 육성법 제정을 주도했고, 1991년에는 기업과 학계를 잇는 한국바이오산업협회 창립을 이끌었다.

1987년 서울대 총장에 취임해서는 학칙의 학생 정치 활동 금지 조항을 없애고 총장의 학생 징계권을 교수회의에 넘기는 등 대학 자율화를 추진했다. 정부가 개정 학칙 승인을 미루자 "승인하지 않으면 물러나겠다"고 맞서 끝내 관철했다. 1992년 교육부 장관으로 취임한 뒤에도 대학 자율화에 힘썼다.

1994년에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창립을 주도했고 초대 원장을 맡았다. 국제백신연구소(IVI)를 서울에 유치하는 데도 앞장섰다. 2017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됐고, 청조근정훈장과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등을 받았다. 그는 여러 차례 "내 생전에 우리나라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그 소망이 이뤄지진 않았다.

유족은 부인 홍성현씨와 자녀 조진원·조인숙·조진완씨 등이 있다. 장례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으로 엄수된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6일 오전 7시. (02) 2072-2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