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빛내리(57) 기초과학연구원(IBS) RNA 연구단장 겸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가 세계적 생명과학상인 휴먼프론티어사이언스프로그램(HFSP) 나카소네상의 2027년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1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했다. 2010년 상이 제정된 이후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권 연구자가 받는 것은 처음이다.
나카소네상은 생명과학의 기존 한계를 넘어선 연구자에게 주는 상으로, 평생 업적보다 최근 10년 안에 이뤄낸 구체적인 발견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역대 수상자 21명 가운데 4명이 노벨상을 받아 '노벨상으로 가는 징검다리'란 평가도 받는다. HFSP 창설을 주도한 고(故)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이름을 땄다.
김 단장은 전령 RNA(mRNA) 끝에 붙는 '꼬리'의 비밀을 밝혀내며 유전자 발현의 새로운 원리를 규명한 공로로 이 상을 받았다. DNA가 생명의 설계도라면, RNA는 그 설계도에 담긴 정보를 꺼내 전달하고 조절하는 분자다. 이 가운데 mRNA는 단백질을 만들라는 명령을 세포 안 공장에 전달하는 '작업 지시서' 역할을 한다.
김 단장은 이날 본지에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 지원 덕분에 남들은 선뜻 하기 어려운 연구도 빠르게 시도할 수 있었다"며 "오랜 시간 많은 연구원과 함께 이뤄낸 성과"라고 했다. 이어서 "정말 기초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한 연구가, 치료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며 "기초 원리를 밝히는 연구와 실제 백신·치료제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연구를 함께하고 있다"고 했다.
김 단장은 mRNA가 세포 안에서 만들어지는 핵심 과정을 밝힌 세계적 석학이다. RNA 생물학의 기본 틀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 미국 국립과학원 외국인 회원에 선출됐고, 2021년에는 이상엽 KAIST 교수와 함께 한국 연구자로는 처음 영국 왕립학회 외국인 회원이 됐다. 왕립학회는 뉴턴과 다윈, 아인슈타인 등이 회원으로 활동했던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자 단체다.
대중에겐 신종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이름을 알렸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감염된 세포 안에서 어떤 RNA를 만들어내는지 정밀하게 분석한 '전사체 지도'를 국제 학술지 셀에 발표해 큰 주목을 받았다.
김 단장은 "한국 과학계가 이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연구비와 인력 규모를 볼 때 남들이 해온 연구를 따라가는 데 만족할 단계는 지났다"며 "남들이 해보지 않은 질문에 도전해야 한다"고 했다.
논문 수와 학술지 영향력에 치우친 평가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객관적인 지표가 한국 과학 발전에 기여한 부분도 없지 않다"면서도 "앞으로는 정량 평가와 함께 연구의 독창성과 가능성을 보는 정성 평가가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젊은 연구자들이 해외로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 현실도 걱정했다. 그는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비교하면 한국의 박사후연구원과 조교수급 인건비는 경쟁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인재 유출을 인재 유입으로 바꾸려면 연구자 처우부터 국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여성 연구자들에 대해선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여전히 여성 연구자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며 "그럼에도 미리 걱정하고 먼저 위축되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이어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있었지만 기죽지 않고 낙관적으로 다음 시도를 계속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내년 7월 HFSP 연례학술대회에서 메달과 상장, 연구지원금 1만5000달러(약2250만원)를 받고 수상 기념 강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