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장관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초대 원장을 지내며 한국 기초과학과 과학기술 발전을 이끈 조완규 전 서울대 총장이 13일 별세했다. 향년 98세.
유족에 따르면 조 전 총장은 이날 오전 3시 30분 서울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고인의 업적을 기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葬)으로 치러진다.
1928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문리대 생물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57년부터 1992년까지 서울대에서 연구와 교육에 헌신했다. 국내 기초생물학을 개척한 1세대 과학자로 평가받는다.
한국전쟁 직후 제대로 된 연구 장비조차 부족했던 시절에도 연구를 이어갔다. 연필과 종이만으로 한국인의 출생성비를 분석해 국제학술지에 발표했고, 이후 포유동물 난자의 성숙 과정을 조절하는 기전을 규명하며 세계 발생생물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난자와 배아를 안전하게 운반하는 새로운 배양법을 개발하는 등 독창적인 연구 성과도 남겼다.
36년간 서울대 강단에서 후학을 길러낸 그는 50여 명의 석·박사를 배출했다. 이들은 고인의 호를 따 '설랑(雪浪) 문하생'으로 불리며 국내 발생생물학 연구를 이끌었다.
◇ 기초과학 토대 닦고 교육 개혁 이끈 과학행정가
조 전 총장은 연구자뿐 아니라 과학행정가로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80년대 초 유전공학육성법 제정을 주도해 연구비 지원과 전문인력 양성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고, 1991년 한국바이오산업협회를 창립해 연구성과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으로 과학기술계 조직 혁신을 추진했고, 국제백신연구소(IVI)의 국내 유치를 성사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1994년에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창립과 함께 초대 원장을 맡아 국내 과학계의 국제 교류 확대와 학술 기반 구축을 이끌었다.
1987년 서울대 총장에 취임해서는 정치활동 금지 조항을 삭제하고 학생 징계권을 교수회의로 이관하는 등 대학 자율화를 추진했다. 1992년 교육부 장관으로는 대학 자율성 확대와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 "젊은 과학자에게 미래 있다"…끝까지 노벨상 꿈꿔
조 전 총장은 생애 마지막까지 후배 과학자 육성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연구 환경이 열악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반 마련에 힘썼다.
서울대 총장 시절 연구비 중앙관리제도를 도입해 연구비 집행 체계를 정비했고, 해외 연수를 마친 교수들이 사용하던 연구 장비를 국내로 들여와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특히 생애 마지막까지 한국인 노벨과학상 수상을 가장 큰 바람으로 꼽았다.
서울대 동창회보 인터뷰에서 그는 "젊은 과학자의 창의성, 능력, 의지 그리고 추진력을 보면 노벨상 수상자 배출이 가능하다"며 "이들이 연구 활동을 계속할 수만 있다면 30년 혹은 40년 후 분명 노벨과학상 수상 후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전에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배출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인터뷰에서는 "젊은 세대는 창의력이 충만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다"며 "한림원 구성원은 젊은이의 스승으로서 과학기술력을 축적하도록 힘을 북돋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성현 씨와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6일 오전 7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