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속담이 있다. 오로지 자기 이익만 찾는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꿀벌이라면 '달면 혀 내밀고 쓰면 입 닦는다'라고 해야 한다. 꿀벌도 그렇게 감정을 얼굴에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남방의과대 연구진은 "뒤영벌(학명 Bombus terrestris)이 음식을 싫어할 때는 고개를 흔들며 입을 닦고, 좋아할 때는 입술을 핥는 모습을 포착했다"고 지난 6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뒤영벌은 꿀벌과(科) 뒤영벌속(屬)의 곤충으로, 농작물의 꽃가루받이에 많이 쓰이는 수정벌이다. 검고 통통한 몸집에 주황색이나 노란색 띠가 있다. 영어로는 범블비(bumblebee)라고 한다.
논문 공저자인 앤드루 배런(Andrew Barron) 호주 맥쿼리대 교수는 "뒤영벌은 단순히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뻐하거나 무언가를 좋아할 때 그 감정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발견이 곤충의 내면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맛 따라 호감, 비호감 표정 보여
그동안 꿀벌이 도구를 사용하고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며, 4까지 세는 것은 물론 '0'이라는 개념까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잇따라 밝혀졌다. 하지만 꿀벌이 감정과 같은 내적 상태를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곤충은 포유류처럼 감정을 전달하는 데 쓰는 안면 근육을 갖고 있지 않다.
연구진은 먹이에 대한 반응으로 감정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뒤영벌에게 설탕과 소금, 쓴맛을 내는 퀴닌이 든 물을 각각 주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고해상도 카메라로 촬영했다. 설탕물을 맛본 뒤영벌은 꽃에서 꿀을 빨 때 쓰는 혀 모양의 돌기(glossa)를 반복적으로 내밀었다. 짠맛과 쓴맛을 보면 입을 닦고 고개를 저었다.
곤충이 먹이에 대해 좋거나 싫어하는 모습을 관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포유류는 맛있는 먹이를 먹고 표정을 짓는데, 이는 단순히 먹이를 찾고 섭취하려는 본능을 넘어선 내면 세계가 존재한다는 증거로 여겨진다. 감정과 유사한 행동은 포유류 외에서는 한 번도 관찰된 적이 없다.
배런 교수는 뒤영벌의 미세한 표정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곤충을 동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소형 로봇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항상 갈등이 있었다"며 "이번 연구는 꿀벌에게도 내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진전"이라고 말했다.
◇병맛도 운동 후엔 꿀맛
두 가지 반응은 즐거움이나 불쾌감을 나타내는 감정 신호라기보다는 단순히 서로 다른 화학 물질에 다르게 반응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뒤영벌들은 마실 물이 없는 더운 환경에 노출되면 일반 물이나 소금물을 마실 때도 혀를 내밀었다. 같은 물질이 다른 반응을 유도한 것이다.
연구진은 몸 상태에 따라 감정이 바뀐 탓이라고 해석했다. 배런 교수는 "지금 전해질 음료를 주면 맛이 꽤 역하다고 생각하지만, 장거리 달리기를 마치고 마시면 '정말 최고다'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내부 상태가 변해 사물에 대한 평가를 바꾸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뒤영벌의 표정은 단순히 먹이를 찾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포유류에서 먹이를 찾으려는 동기를 좌우하는 도파민을 뒤영벌에게 줘도 혀 내밀기 횟수는 증가하지 않았다. 반면 포유류에서 음식에 대한 호감을 높이는 엔도카나비노이드를 꿀벌에게 주면 혀 내밀기 횟수가 증가했다. 식욕과 즐거움을 나타내는 감정은 달랐다는 의미다.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가 어려운 주제를 파고든 혁신적인 연구라고 평가했다.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의 조나단 버치(Jonathan Birch) 교수는 "꿀벌에서 원한다는 것과 좋아한다는 것이 구분돼 밝혀진 첫 사례"라며 "현대적인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이 과소평가해 온 곤충들의 행동을 밝혀내는 연구의 황금기가 열렸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의 랠프 아돌프스(Ralph Adolphs) 교수도 "논문에 제시된 증거는 꿀벌들이 미각 자극의 가치를 유연한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다만 이번 실험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의 쾌락을 입증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했다. 그는 "배우가 표정을 속이고 얼굴 근육이 마비된 사람들도 여전히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표정이 말 그대로 감정을 구성한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참고 자료
PNAS(2026), DOI: https://doi.org/10.1073/pnas.2529114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