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원자력의 태동기부터 기술 자립까지 전 과정을 이끈 1세대 원자력 공학자 이창건 전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장이 지난 6일 별세했다. 향년 96세다. 분단과 6·25 전쟁, 근대화와 산업화 등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곡을 온 몸으로 겪으며 과학기술 입국의 길을 연 선각자로 꼽힌다.
이 전 원장은 1930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났다. 1947년 가족과 함께 월남했고, 1949년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6·25전쟁 때는 미군이 이북 출신 청년들을 중심으로 운영한 비정규 첩보 조직 켈로(KLO) 부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1950년대 후반 자생적 원자력 연구 모임인 '뉴클리어 스터디 그룹' 회원으로 활동하며 국내 원자력 기반을 닦는 데 참여했다. 이 모임은 원자력법 제정과 정부 원자력 기구, 연구소 설립 논의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전 원장은 1959년 국내 첫 원자로인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2'(TRIGA Mark-Ⅱ) 도입과 건설 과정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원자력 연구관 해외 파견으로 미국 국제원자력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귀국 직전 트리가 마크-2 운전 훈련을 받으라는 긴급 훈령을 받고 시험에 합격해 한국 최초로 원자로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트리가 마크-2의 출력을 100㎾에서 250㎾로 높이는 출력 증강 사업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해마다 외국에서 사 오던 중성자원을 재생식으로 바꾼 일은 국내 원자력 기술 국산화의 효시로 꼽힌다.
이 전 원장은 우리나라 최초 원전 부지 선정 사업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그는 고리를 첫 원전 부지로 선정하는 작업을 주도하며 이후 국내 원전 부지 선정의 모델을 구축했다. 또 한국전력산업기술기준(KEPIC) 제정을 20여 년간 이끌며 한국 전력산업 기술의 표준화와 국제화에 기여했다.
국내 첫 소형 원자로인 스마트(SMART) 원자로 개발 과정에서도 역할을 했다. 스마트 원자로는 전력 생산과 해수 담수화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소형 원자로로, 이 전 원장은 관련 기술 개발을 통해 한국 원자력 기술의 해외 진출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썼다.
그는 한국원자력학회 창설 회원으로 초대 편집위원을 지냈고, 국제원자력학회협의회(INSC) 회장도 맡았다. 2012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INSC 글로벌 어워드를 받았고, 2017년에는 정부가 선정한 초대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32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8일 오전 9시 30분, 장지는 광릉추모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