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투자기획과장이 중장기투자전략 주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부가 앞으로 5년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어떤 분야에, 어떤 기준으로 투자할지 정하는 새 로드맵을 공개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양자, 우주 등 국가가 키울 기술을 정하고 성과 목표와 투자 방식을 함께 묶겠다는 구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제2차 국가 R&D 중장기 투자전략안(2026~2030)' 공청회를 열고 산학연 전문가와 현장 의견을 들었다.

중장기 투자전략은 과학기술기본법에 근거한 법정 계획으로, 정부 R&D 예산의 큰 방향을 정하는 최상위 투자 전략이다. 지난달 확정된 제6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이 과학기술 정책의 목표를 담았다면, 이번 전략은 그 목표를 실제 예산과 사업으로 어떻게 옮길지 정하는 로드맵이라고 볼 수 있다.

전략안의 큰 틀은 'N.E.X.T 투자전략'으로 정리됐다. N은 주력기술 집중 육성, E는 미래기술 주권 강화, X는 연구 생태계 확장, T는 투자시스템 효율화를 뜻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30년까지 AI 3대 강국, 과학기술 5대 강국, 최고 선도국 대비 기술경쟁력 90%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주력기술 집중 육성에는 AI,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차세대 통신, 첨단 모빌리티가 포함됐다. 정부는 2030년까지 세계적 수준의 AI 모델 확보, 산업 전반의 AI 전환(AX)을 추진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 세계 2위와 유니콘 기업 5개 육성을, 이차전지 분야에서는 차세대 전지 상용화와 핵심 소재 공급망 자립을 목표로 제시했다. 차세대 통신은 6G 상용화와 저궤도 위성 실증, 첨단 모빌리티는 레벨4 자율주행 상용화와 도심항공교통(UAM) 기술 개발이 주요 과제로 담겼다.

미래기술 주권 강화 분야에는 첨단바이오, 양자, 로봇, 소재·에너지·국방·우주 등 공급망·안보 관련 기술이 포함됐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블록버스터 신약 2개와 유니콘 기업 3개 육성, 양자 분야에서는 100큐비트급 양자프로세서 실증과 100㎞급 양자네트워크 검증을 목표로 잡았다. 로봇은 2030년 휴머노이드 로봇 양산과 핵심부품 국산화율 70% 달성을 추진한다.

연구 생태계 확장에는 기초연구,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인재, 지역, 중소·벤처 지원이 담겼다. 정부는 기초연구 투자를 정부 R&D의 10% 수준으로 정착시키고, 출연연을 대형·장기 국가임무 중심으로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인재 분야에서는 2030년까지 세계 인재 순위 20위권, 인재 순유입 500명을 목표로 제시했다. 지역 R&D는 '5극 3특' 혁신거점 완성과 지역 딥테크 창업 350개 육성이 핵심이다.

투자시스템 효율화는 R&D 예산을 편성하고 관리·평가하는 방식의 개편을 뜻한다. 정부는 소규모로 쪼개진 사업을 기술 분야 중심으로 통합 관리하고, 대형 R&D 사업의 사전 점검과 연구장비 심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예산 편성, 사업 관리, 평가 전 과정에 AI를 도입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제2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 4대 전략 및 8대 과제./과학기술정보통신부

김영수 과기정통부 연구개발투자기획과장은 "최근 20년간 나온 과학기술 논문 3381만건과 국정과제 등 주요 과학기술 정책 자료를 AI로 분석해 투자 분야를 정했다"며 "전문가 400여 명이 참여해 30차례 이상 논의를 거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패널토론에서는 전략안의 방향성에 대한 평가와 함께 보완 과제도 나왔다. 손지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기획조정본부장은 출연연 투자전략과 관련해 연구과제중심제도(PBS) 폐지와 전략연구사업을 통한 임무 거점화를 핵심 변화로 짚었다.

다만 손 본부장은 임무 설정 과정에서 출연연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와 민간 수요를 반영하더라도 각 출연연이 가진 고유 역량과 특성이 다른 만큼, 기관 스스로 임무를 기획하고 수행할 여지가 필요하다"며 "박사후연구원 등 젊은 연구자가 수련 단계 이후 출연연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인재양성 정책이 성과를 내려면 연구공간과 장비 같은 기본 인프라 투자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주요 대학 캠퍼스가 포화 상태다 보니, 대형 연구과제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경기 회복에 따른 초과세수가 생길 경우 이를 연구중심대학의 연구공간, 실험실, 과학기술 기자재 등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과기정통부는 7월 중 현장 의견과 관계부처 협의를 반영해 전략안을 보완할 계획이다. 이후 8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하고, 9월부터 부문별 중기계획, 연도별 투자방향, 지출한도 등에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박인규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중장기 투자전략은 반도체 슈퍼사이클 이후를 대비한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의 청사진"이라며 "공청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현장과 소통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